『미국 대통령의 권력 행사』 게이츠 “미국의 추락은 대통령들이 권력행사 제대로 못한 탓” [김용출의 한권의책]
성탄절인 1991년 12월25일, 망치와 낫이 그려진 소련 국기가 크렘린궁에서 내려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구적 냉전 체제가 와해된 그날, 미국은 현대사에서 유례가 없는 세계 권력의 정점에 홀로 우뚝 섰다. 다시 1년여 뒤 빌 클린턴이 제42대 미국 대통령으로 오른손을 들어 취임 선서를 했을 때, 미국은 군사와 경제, 정치 등 권력의 모든 차원에서 단독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은 여전히 지구상 군사 및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이지만, 모든 면에서 도전받고 있다. 세계는 1940년대 말 냉전체제가 형성된 이래 가장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아들 부시 및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하는 등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50년 동안 여덟 명의 대통령 밑에서 국가안보 분야에서 봉직해온 저자는, 책 『미국 대통령의 권력 행사』(박동철 옮김, 한울아카데미)에서 1990년대 절정에 달했던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예전만 못하고 중국의 추격을 허용한 것은 냉전 종식 뒤 미 대통령들이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미래에는 어떻게 해야 사용해야 할지를 전망했다.
분석 결과, 지난 30년간 미국 대통령들은 15개 국가 또는 지역에서 제기된 도전을 놓고 임기 내내 골머리를 썩였지만, 대부분 성공과 거리가 멀었다. 미국이 개입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례는 콜롬비아와 아프리카 두 곳뿐이었다. 나머지 소말리아, 아이티, 유고에선 실패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끝없는 전쟁에 신음해왔으며, 이라크전쟁은 저주가 됐다. 이란과 우크라이나, 시리아, 북한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러시아와 중국은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대통령들이 자신들의 손에 놓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당장 미국의 임무를 둘러싸고 클린턴과 조지 W. 부시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세계를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개입주의자 우드로 윌슨의 편에 섰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일에만 신경 쓰자’는 고립주의자 존 퀸시 애덤스 쪽에 가까웠고, 오바마는 양면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어정쩡했다.
특히 소련과의 오랜 경합에서 중요했던 비군사적 자산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 역량을 키우고 사용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꼬집었다. 한 나라 또는 국가 지도자가 가진 권력에는 군사적인 것과 비군사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군사력은 여전히 강대국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고, 파나마와 아프가니스탄, 리비아에서 정권을 교체했다. 러시아는 조지아를 점령하고 크림반도를 병합했으며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분쟁 도서를 점령하고 요새화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군사력은 물론 경제력, 사이버 역량, 전략적 소통, 과학기술, 이데올로기 등 비군사적 자산도 상당히 축적돼 있다며 향후 미국이 직면할 도전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버거우며 가장 위험한 상대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중국 간 장래에 군사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예측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베이징과 워싱턴의 지도자들이 현명하다면 두 나라간 경쟁은 평화로우며 주로 비군사적 부문에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국의 일부 인사들은 해법으로서 중국의 체제변동을 희망한다. 그것이 공산당 독재가 붕괴되고 비공산당 체제로 대체된다는 의미라면, 필자는 그들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본다. 게다가 14억 인구와 핵무기를 가진 중국의 불안정은 우리의 이익이 아니다. 가능성이 가장 큰 미래는 주로 비군사적 국력수단을 통해 장기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 관계다.”(436쪽)
향후 수십 년 동안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은 강한 군사력뿐만 아니라 비군사적 도구의 재구축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거듭 역설했다.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것은 핵시대 군사력 한계를 알고서 외교와 경제, 소통 등 많은 비군사적 힘을 활용한 아이젠하워, 미군 증강을 통해서 소련을 힘들게 하는 한편 외교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냉전을 완화한 레이건, 비범한 외교를 통해서 동유럽의 해방을 촉진하고 소련 종식을 관리한 아버지 부시 등 군사적인 힘과 비군사적인 힘을 현명하고 균형 있게 사용한 미 대통령 덕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외교와 제재의 거듭된 실패를 되돌아볼 때 아마 우리는 일련의 권력수단 행사가 포괄적 비핵화라는 우리의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으며 가까운 장래에도 실패할 사례를 북한이 제공하고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목표를 바꾸고 우리의 눈높이를 낮추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아주 작은 수로 제한하는 협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400쪽)
책은 지난 30년간 미국과 미 대통령들이 국제사회의 주요한 도전에 어떠한 관점으로, 어떤 전략과 방법으로 대응해왔으며, 그들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도전과 이슈가 나열돼 있어서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미국이 중국과 소련, 북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일정한 시사점을 얻을 수도. 원제는 Exercise of Power.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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