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상어가 보낸 명세서'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며칠 전 막을 내린 '프리즈 서울'에서 한 영국의 골동품 갤러리는 한장의 연회메뉴판을 25만파운드(약 4억원)에 시장에 내놓았다. 1956년 중국 마오쩌둥의 친필사인이 들어간 이 연회메뉴판에는 당시 5명의 정치인과 파키스탄 초대 총리인 샤히드 수라와르디의 서명도 함께 기록돼 있다.
메뉴는 이슬람교도인 파키스탄 총리를 배려하여 돼지고기를 빼고 생선, 야채, 가금류 위주의 중국 음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극진한 손님 대접에 빠지지 않는 상어지느러미와 제비집요리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연회가 열린다면 양국의 친선 관계가 아무리 좋더라도 이와 같은 메뉴로는 행사를 열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정부가 야생동물 보호를 명목으로 2013년부터 공식연회에서 샥스핀과 제비집요리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샥스핀은 원래 중국 설에 주로 먹던 명절음식이고 각종 연회에 빠져서는 안 되는 메뉴였다. 그런 중국본토에서 점차 젊은 층의 샥스핀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반면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어가고 있다.
상어보호를 위해 국제사회에서는 상어부산물 수입 시 상어지느러미와 몸통의 무게 비율을 5 : 95로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부응하여 공인검량사가 발급한 상어부수 어획물에 대한 공인검정보고서를 갖추어 신고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상어지느러미만 취하고 상어고기를 버리는 행위는 전세계 100여국이 금지하였고 41개국은 아예 상어어획과 무역조차 금지하였다.
상어의 지느러미만 채취하는 행위(Shark Finning)를 금지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어부들은 상어지느러미만 팔 수 없으니 이제는 팔아야 하는 상어고기(Shark Meat)가 생긴 것이다. 상어지느러미의 주 소비처는 중국, 홍콩, 대만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다. 반면 상어고기의 소비는 유럽 쪽이 우세하다. 전세계 상어고기 수출량에서 세계 1위는 스페인이고 상어고기 수입에서는 이탈리아가 1위인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유럽연합 전체로 보면 전세계 상어무역의 22%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상어지느러미 요리로 상어의 개체 수가 줄어든다는 책임을 중국 등에만 전가하기에는 머쓱한 부분이 있다.
실제로 상어고기는 부지불식간에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영국에서 피시앤칩은 흰살생선을 튀김반죽에 튀겨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다. 보통은 대구가 많이 사용되어 왔다. 한 조사에서 임의로 피시앤칩 식당의 원재료를 조사해 보니 생선의 90% 이상이 곱상어(Spiny Dogfish)를 사용했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식당에서는 곱상어를 'Rock Salmon'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였다고 한다. 곱상어의 가격도 대구살에 비해 절반가격으로 저렴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도 나쁠 리는 없다.
우리나라도 상어고기로 사각 깍뚜기 모양으로 썬 식재료가 유통되고 있다. 큰 문구로 회덮밥용이라 적혀 있지만 뒷면의 원재료에는 상어라고 표기되어 있다. 보통 참치라고 생각하지만 메뉴에 회덮밥으로만 되어 있다면 원재료를 한 번쯤 체크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모든 상어고기가 상어 이름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것은 아니다. 떳떳하게 이름 붙여 파는 음식도 많다. 인도남서부 고아(Goa)에서는 상어살로 만든 암봇틱(Ambot tik)이라는 카레를 먹어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식 노란 강황 카레와는 달리 고추, 토마토, 타마린드로 맛을 내고 새콤한 맛도 살짝 낸 생선 카레다. 상어고기는 담백하고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웠고 잡내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경상도, 제주도에서 상어고기를 제사용으로 전을 부칠 때 사용해 왔다. 상어고기를 소금에 절여 돔베고기라는 이름으로 구워 먹기도 한다. 울산, 경주 등의 지역에서는 상어머리, 내장, 살코기를 찌고 차게 해서 초장에 찍어 먹는데 이를 상어두치라고한다.
이제 상어보호는 전세계적인 공통 관심사가 됐다. 다만 나라별 행정조치는 아직 혼란스러운 점이 많다. 국내에서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상어가 단 두 종류인데 고래상어와 홍살귀상어가 이에 속한다.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면 어획 행위도 금지된다. 까치상어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NC)에서 정한 멸종위기(EN,endangered) 종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상어 전체를 두고 포획하거나 섭취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상어가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무분별한 포획으로 상어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 생태계에 큰 혼란이 오고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인류가 값싸게 남획했던 상어지느러미는 이제 커다란 상어고기의 공급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상어를 떳떳하게 먹는다고 할 수도 없으니 공급이 늘었어도 마음 놓고 소비하기도 어렵다. 70년전 마오쩌둥의 샥스핀 요리가 담긴 메뉴판의 가치가 수천배 올랐다. 우리는 상어를 남획한 값비싼 심리적 명세서를 받게 될 것 같다.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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