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맞아? 사상 초유 ‘80%’ 도달한 메이저리그, 이대로 괜찮을까[슬로우볼]

안형준 2023. 9.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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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80%. 메이저리그에 사상 초유의 숫자가 등장했다.

10번 중 8번을 의미하는 80%. 과연 어떤 지표일까. 바로 올시즌 메이저리그 전체의 도루 성공율이다. 2023시즌 메이저리그는 9월 12일(한국시간)까지 '리그 전체 도루 성공율' 80.07%를 기록했다.

12일까지 메이저리그에서는 총 3,868번의 도루 시도가 있었고 3,097차례가 성공이었다. 실패는 단 771번.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지만 리그 전체 도루자 771개는 메이저리그 확장시대(1961-) 역대 최소 7위의 기록이다.

올해보다 도루자가 적었던 지난 6번의 시즌은 올해와는 전혀 달랐다. 771번 미만의 총 도루자가 기록된 6번의 시즌 중 도루 성공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총 2,213번의 도루 성공이 기록된 2021년이었다(성공율 75.7%). 2021년은 올시즌 이전까지 역대 도루 성공율이 가장 높았던 시즌이었다. 나머지 5번은 도루 성공이 채 1,400번도 되지 못하는 시즌들이었다.

메이저리그는 1890년부터 2019년까지 단 한 번도 리그 전체 도루 성공율 75%를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 단축시즌부터 도루 성공율이 75% 이상으로 올라섰다. 단축시즌에 75.1%, 2021년에는 75.7%, 지난시즌에는 75.4%로 3년 연속 75%대의 도루 성공율을 기록했다.

성공율이 높았을 뿐, 도루 자체가 뛰어나게 많지는 않았다. 2010년대 후반 홈런의 시대를 맞이하며 줄어든 도루는 지난해까지도 '기'를 펴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역대 최고 성공율이었던 2021년의 2,213도루는 확장시대 62번의 시즌 중 48위의 기록이었다. 2022년의 2,486도루는 44위. 경기 수가 적었던 단축시즌은 당연히 최하위(885개)였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12일까지 기록한 3,097도루는 확장시대 20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2021년보다 벌써 900개 가까이 증가했고 지난해에 비해서도 600개 이상이 늘어났다. 팀 당 60경기를 치른 2020년 단축시즌 총 도루 수와 2023년-2021년 도루 수가 비슷하다. 사실상 팀 당 162경기가 아닌 팀 222경기 시즌을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숫자의 도루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리그 구성원에 눈에 띄는 변화도 없다. 올시즌 갑자기 신인 '대도'가 수십명 쏟아져 나온 것은 아니다. 올시즌 30도루 이상을 기록한 '루키'는 단 두 명 뿐. 아메리칸리그 도루 1위를 달리고 있는 에스테우리 루이즈(OAK)와 내셔널리그 신인왕이 유력한 코빈 캐롤(ARI)이다. 30개 미만의 도루를 기록한 선수 중에서는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45개 이상의 베이스를 훔친 앤서니 볼피(NYY)와 엘리 데 라 크루즈(CIN) 정도가 있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주자지만 이들이 리그 전체 도루를 900개 가까이 늘리고 성공율을 5%나 높인 것은 아니다. 최고의 포수였던 야디어 몰리나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것이 리그 전체 도루 저지율을 5%나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 것도 당연히 아니다.

이유는 명확하다. 올해 새롭게 도입된 규정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올시즌 '스피드 업'과 '공격 야구'를 위해 피치 클락을 도입했고 베이스 크기를 확대했으며 수비 시프트를 제한했다. 그리고 '견제 횟수 제한' 규정도 신설했다. 모든 것이 수비 측, 투수에게 거의 일방적인 족쇄를 채우는 것이며 특히 시프트 제한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자를 사실상 '자유롭게' 풀어주는 규정이었다.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투수가 한 타자를 상대하며 세 번 투구판에서 발을 떼면(견제, 숨고르기 등 모두 포함) 보크와 마찬가지로 주자를 진루시키는 '견제 제한' 규정과 주자가 있을 경우 타자의 타격 준비시간 포함 20초 내에 공을 던져야 하는 피치 클락은 사실상 배터리가 베이스 상의 주자를 전혀 신경쓰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베이스 크기가 커진 덕분에 주자들은 더 짧은 거리만 뛰어도 도루에 성공하게 됐고 투수의 견제구가 제한돼 베이스에서 리드와 귀루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체력마저도 아낄 수 있게 됐다. 당연히 도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도루 실패는 줄었다. 올시즌 총 도루 수가 역대 1위가 아닌 것은 사실상 선수들이 '뛰지 않아서'지 '뛰지 못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타자들이 메이저리그보다 마이너리그에서 더 좋은 기록을 쓴다. 하지만 올해 신인들 대부분은 마이너리그와 거의 차이가 없는 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메이저리그급 주자 견제'가 사라진 탓이다.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ATL)가 역대 최초 한 시즌 30홈런 60도루를 기록하고 '40-70 클럽'이라는 그야말로 황당하기까지 한 '미친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주자를 잡지 못하도록 배터리의 손발을 묶어버린 새 규정 덕분이다. 올해 이전까지 아쿠나가 프로 무대에서 기록한 한 시즌 최다 도루는 마이너리거 시절인 2017년의 44개였다(ML 기록 2019년 39개). 2021년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고 도루 시도가 줄었던 아쿠나는 새 규정과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를 써가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역대 단일시즌 최다도루 기록은 1800년대 선수인 휴 니콜이 기록한 138개(1887년). 현대 시대(1900-) 최다 기록은 1982년 '대도' 리키 헨더슨이 기록한 130개다. 만약 21세기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갖고 있는 2007년의 호세 레이예스(78개)나 발야구의 대명사인 제이코비 엘스버리(2009년 70도루), 디 고든, 빌리 해밀턴, 후안 피에르 등이 올해와 같은 규정과 함께 시즌을 치렀다면 헨더슨의 역사적인 기록은 이미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새 규정으로 스피드업에는 분명 성공했지만 대단한 '공격 야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리그 전체 타율은 '타율은 낮아지고 홈런만 늘어났던' 2010년대 후반 '홈런의 시대'보다도 낮아졌다. 홈런의 시대보다 홈런은 줄어들었고 도루는 크게 늘었다. 공인구 반발력에 손을 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난무했던 홈런의 시대가 이제는 리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밀어주는' 규정을 등에 업고 도루의 시대로 변했을 뿐이다.

특유의 '최고급' 주자 견제 능력을 바탕으로 빅리그 커리어 10년 간 도루를 단 8개 밖에 허용하지 않은 류현진(TOR)이 지난 7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 도루 3개를 내준 것, 11일 토론토와 텍사스의 경기에서 3루 주자를 두 번 견제한 크리스 배싯(TOR)이 주자가 아예 홈플레이트 근처까지 리드 폭을 넓히려는 것을 보고 공을 들고 달려나간 것은 모두 새 규정이 얼마나 투수에게 일방적인 불이익을, 주자에게 리스크 없는 절대적 이득만을 주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들이다.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은 결국 문제를 불러온다. 과연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올시즌 리그를 잠식한 '도루의 홍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언제까지 한 쪽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지 주목된다.(자료사진=로날드 아쿠나 주니어)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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