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문화자유행동/서동철 논설위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리 문화단체의 역사는 이념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이에 맞서 민족 진영은 1947년 2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를 출범시킨다.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이 출범한 것은 1988년이다.
문화자유행동이 보수 문화예술인의 권익을 뛰어넘어 국민의 문화적 권익을 수호하는 문화단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단체의 역사는 이념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출범한 것이 1945년 8월 18일이다. 처음에는 순수문화단체의 인상을 풍겨 문화예술의 구심점이 되는가 싶었지만 곧 좌익 성향을 드러낸다. 카프(KAPF)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핵심 단원들이 주도했으니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이에 맞서 민족 진영은 1947년 2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를 출범시킨다. 6·25 전쟁 기간 산하 단체를 망라한 비상국민선전대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문총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해산됐지만,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예총)라는 이름으로 다시 집결해 오늘에 이른다.
예총이 집권당의 직능조직이었다는 사실은 잊혀져 가고 있다. 음악·국악·연극·무용·미술·건축·사진 등 산하 협회에 전국적 지방 조직까지 갖고 있으니 무시할 수 없었다. 영화배우 신영균과 중요무형문화재 태평무 보유자였던 무용가 강선영이 국회의원이 되고, 수필가 조경희가 제2정무장관에 오른 것도 예술적 성취와 관계없이 예총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이 출범한 것은 1988년이다. 1987년 이른바 6월항쟁으로 진보적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숨통이 일부 트인 결과일 것이다. 1999년에는 다시 문화 부문의 진보적 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연대가 활동을 시작한다. 모두 ‘정치권력으로부터 문화예술의 독립’을 내걸었지만,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는 예총의 전철을 밟는 것은 불가피했다.
문화자유행동이 엊그제 창립총회를 가졌다는 소식이다. ‘문화를 정치적 도구로 삼으려는 일부 예술가나 집단이 갈등의 진원지가 되는 상황에서 사회 비판을 넘어 이념적 진영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방편으로 예술을 사용하는 것을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창립 선언문의 한 대목이다.
‘문화인들에게 폭넓고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하겠다’는 구절도 보인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문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수없이 봐오지 않았나. 문화자유행동이 보수 문화예술인의 권익을 뛰어넘어 국민의 문화적 권익을 수호하는 문화단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Copyright © 서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겨드랑이 털이 뭐 어때서? 남자도 밀고, 여자도 기른다 [김유민의 돋보기]
- “똥귀저기로 싸대기 맞았다”…어린이집 교사 가족 청원
- “너지? 대전 교사 죽인 놈들” 엉뚱한 식당에 ‘가해자 응징’ 별점 테러
- 유료광고 나선 유튜버 조민…‘홍삼세트’ 소개하며 “좋은 일 동참”
- 얼굴 피멍·손목 골절…현아, 아찔한 사고 당했다
- ‘돌려차기’ 피해자, 최윤종에 “용기있는 자가 미녀를? 이건 범죄” 분노
- 아이만 10명… 일론 머스크 “안 사귀고 정자만 기증”
- 또래 옷 벗기고 폭행 장면 SNS 생중계 중학생 ‘집유’ 감형 왜?
- “핼러윈 때 오지 마세요”… ‘이태원 참사’ 언급한 日시부야
- “촬영 중 몸이…” 한소희, 팬들 걱정할 소식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