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쓰레기” 조롱한 이들 北서 하루만 살게 되길
북에 가서 실제 북 주민 삶 살아보게 할 방법 없나… 그러고도 그 욕이 나올까
태영호 의원이 국회에서 “쓰레기” 소리를 듣던 날 우연히 탈북민들이 자신들 이야기를 하는 동영상을 보게 됐다. 북한 주민들 어려움은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생생한 목소리로 듣는 실상은 또 달랐다.
탈북민들은 한국에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느끼는 듯 했다. 한 분은 “북에서 나는 인생을 산 게 아니라 벌레였다”고 했다. 한 분은 국정원에 도착해 ‘환영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우리가 한국에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우리를 환영하나’라는 생각에 울컥했다고 한다. “OO씨” “분”과 같은 호칭도 이들을 감동케 했다. “동무” 아니면 “야”만 듣던 그들이었다. “벌레 같았던 우리가 여기서 사람 대접을 받는다고 느낀 첫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분들은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한 분은 그냥 인천공항에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탈북민들은 ‘우리가 모르는 우리’를 알려준다. 그분들끼리는 인천공항에 내리면 화장실부터 가봐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깨끗한 화장실’ ‘더운 물이 나오는 수도’가 우리에겐 당연하지만 그분들에겐 신기했다. 탈북민들은 모두 ‘밤에도 밝은 세상’에 충격을 받았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자신들만 안다고 했다. 전기가 언제 나가는지 잠을 안 자고 기다렸는데 날이 밝도록 전기가 들어오더라고 했다.
그분들에게 주민등록증과 여권을 받던 순간은 ‘감격’이었다. 한 분은 “갑자기 나도 모르게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그 때까지 죽을 고생이 그 순간에 사라졌다. 주민증은 자유고 생명이었다.” 탈북민 신변 보호를 위해 한동안 배치되는 경찰관도 이분들에겐 놀라웠다. 괴롭히고 빼앗고 때리는 보안원(북한 경찰)만 아는 이들은 ‘경찰의 보호’ 자체가 신기했다. 한 번도 보호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북에선 조사를 받다가 조사관을 쳐다보기만 해도 때렸다고 한다. 중국에서 잡혀 북송됐던 열네 살 아이는 보위부(정보기관) 3일이 3년 같았고 진짜 지옥을 봤다고 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조차 이분들에겐 이상했다. 국가 위에 김씨가 있는 세상에서 산 탓인 듯 했다. 나중에 대통령이 국기에 경례하는 것을 보고 놀랐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고 한다.
이분들은 ‘대한민국’이 찍힌 초록색 여권에 대한 자부심이 유달리 컸다. 여권이 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었다. 어디든 가서 자랑하고 싶어했다. “중국에서 북한 여권을 보이면 개 취급하는 눈길이 느껴졌다. 대한민국 여권을 보이면 그 반대였다.” 한 분은 “아들이 갑자기 친구들하고 홍콩에 간대요. 아니 거기를 어떻게.... 하다가 아! 이제 어디든 언제든 갈 수 있다 생각이 들어요. 그냥 울었어요. 고마워서요.” 북에선 옆 동네도 쉽게 갈 수 없었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딴 이분은 김정은에게 학위 논문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네가 사람 취급도 안 하던 내가 박사가 됐다고 하고 싶어요.” 한국서 우연히 TV 출연을 한 분은 다음 날 전국에서 폭주하는 주문을 밤새도록 받으면서 계속 울었다고 한다. “고맙습니다. 잘 살겠습니다”라고 했다.
승용차 구입은 이분들에겐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선글라스와 장갑까지 사서 아무 곳이나 달렸다. 한 분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라고 했다. 다른 분은 “북한군 복무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보내주지도 않지만 보내준다고 해도 며칠 걸려 도착하면 장례가 끝난 뒤”라고 했다.
이분들 사이에선 음식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 와서 갑자기 체중이 15kg 는 사람도 있었다. 한 분은 “젓가락을 줘서 놀랐다. 북에서 젓가락은 간부들만 썼고 우리가 쓰면 건방지다고 한다”고 했다. 다른 한 분은 “풀만 먹고 살았는데.... 밥 위에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숟가락이 멈췄다”고 했다.
필자는 북한 실상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실제의 100분의 1도 모르는 것 같다. 치과병원이 없다시피 한 북에선 극심한 치통도 참고 버티다 못 견디면 동네 돌팔이에게 가서 거의 강제로 이빨을 뽑는다. 기절도 한다. 다른 치료가 없으니 한 분은 젊은데도 틀니를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 이빨이 희고 고른 것이 정말 신기했다”고 했다. 북에선 중년 이상 태반이 틀니라고 한다. 칫솔질은 안 하거나 가끔 하는 것이고 칫솔 자체가 귀해 평생 칫솔 한 개로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치과만 아니라 의료 전체가 이 지경일 것이다.
한 분은 “얼어붙었던 우리 마음에 봄이 왔다”고 했다. 다른 분은 “한국 와서 저녁 노을을 처음 봤다. 북에도 노을이 있겠지만 눈에 들어와서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열네 살에 북송됐다 재탈북해 성균관대를 졸업한 청년은 국회에서 일했다. 그는 ‘북에 있었으면 어떻게 됐겠느냐’는 물음에 여러 가능성 중 첫째로 “죽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분은 “수십억원을 준다고 해도 북에 안 간다. 굶어 죽는다 해도 여기서 죽겠다”고 했다.
태영호 의원에게 “쓰레기”라고 하고, 탈북민에게 “변절자”라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북한 김씨를 추종하던 주사파 운동권 출신이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정말 그들이 몇 달, 아니 단 하루라도 북한에서 실제 북한 주민들의 삶을 살아봤으면 한다. 그러고도 “쓰레기” “변절자” 소리가 나오는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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