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인 위한 시니어타운, 韓 39곳 vs 日 1만6700곳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있는 시니어타운(노인복지주택)인 더 시그넘하우스(230가구). 만 60세 이상을 위한 건강 관리 시설과 피트니스센터, 여가 문화 시설 등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고 호텔식 식사도 제공하는 이곳에 입주하기 위해선 지금 신청해도 4년을 기다려야 한다. 입주 대기 시간이 이렇게 긴 것은 경제력을 갖추고 외부 활동도 활발한 ‘액티브 시니어’가 늘면서 시니어타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시니어타운은 전국 39곳, 8840가구 규모에 불과하다. 일찍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웃 일본에 우리의 시니어타운에 해당하는 유료노인홈이 현재 1만6724곳, 입주민이 63만4395명인 것과 비교하면 2%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층(약 3600만명)이 한국(927만명)보다 많은 것을 감안해도 매우 적은 숫자다. 이렇게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지난 3월 임대 분양한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시니어타운 ‘VL르웨스트’는 평형에 따라 최고 205대1, 평균 19대1의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시니어타운을 둘러싼 상황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이 이에 대해 얼마나 준비가 부족한 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2025년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인구는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해 초고령사회(고령 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영국 50년, 미국 15년, 일본 10년이지만, 한국은 7년에 불과하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 사이에선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고,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며 노년을 보내려고 해도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부 정책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 집중되다 보니, 민간 차원의 시니어타운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적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1만6000개인데, 한국은 39개
향후 입주가 예정된 시니어타운도 손에 꼽는 수준이다. 수도권의 경우 올 연말 입주 예정인 인천 서구 청라동 ‘더 시그넘하우스 청라’(139가구), 2025년 하반기 입주를 목표로 하는 경기 의왕시 의왕백운밸리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 스위트’(536가구)와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VL르웨스트’(810가구)’ 등 세 단지를 다 합쳐도 1500가구에 못 미친다.
이처럼 시니어타운 공급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로 ‘분양’을 금지한 정부 규제가 꼽힌다. 원래 시니어타운은 분양과 임대가 모두 가능했다. 2010년대 들어 경기 용인시의 ‘스프링 카운티 자이’ 등 분양형 시니어타운이 집중 공급됐다. 그러나 정부가 2015년 무분별한 전매를 금지한다며 임대만 허용하면서 공급이 끊겼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임대보다는 분양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노인들에게 임대형은 비용 부담이 크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임대는 투자 비용 회수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생활비를 높게 책정하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이진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실장은 “분양을 허용하되 전매 요건 강화 등 투기 방지 수단을 마련하면 중산층 노년 인구까지 시니어타운 입주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높은 진입 장벽에 정책 지원도 부족
올해 정부의 고령사회 관련 예산은 약 27조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고령 인구의 주거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은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급을 막는 규제 때문이다. 현재 노인복지법은 사업자가 토지와 건물을 직접 소유해야 시니어타운을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이지희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은 “시니어타운을 운영할 조직을 갖춘 대기업이나 대형 병원이 아니면 신규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시니어타운 활성화를 위한 정책 지원도 부족하다. 일본의 경우 중산층을 위한 시니어타운인 ‘서비스 지원형 고령자용 주택(사코주)’ 제도를 2011년에 도입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대출도 사업비의 100%까지 가능하다. 한국은 취득세와 재산세를 25% 감면해주는 게 전부다. 건국대 유선종 교수는 “특히 중산층 노인 주거는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이라며 “세제나 대출 혜택을 확대해 민간 중심으로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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