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침체기 한국 마라톤… 역전 마라톤 같은 지역 대회 자주 열자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2023. 9.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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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3세대 원로 양재성 고언

‘8·9′는 한국 마라톤에서 상징적인 날짜다. 1936년 8월 9일(한국 시각)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당시 24세)이 마라톤 금메달, 남승룡이 동메달을 목에 걸고, 56년 후인 1992년 그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황영조(당시 22세·53)가 몬주익 언덕 신화를 일궈냈다. 한국 마라톤은 한때 세계 최강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해방 이후 서윤복(1947년)과 함기용(1950년)이 메이저 대회인 보스턴 마라톤에서 가장 먼저 골인했다. 함기용이 우승할 당시 2위는 송길윤, 3위는 최윤칠이었다.

양재성 고문이 서울 숭문고 교정 안 '족패천하(足覇天下·발로 천하를 제패하다)' 기념탑 앞에 섰다. 백범 김구 선생이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서윤복에게 선물한 휘호다. /강호철 선임기자

그러나 그 휘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0년생 동갑내기 황영조와 이봉주 위용이 희미해져갈 무렵,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지영준(42)이 금메달(2시간 11분 11초)을 차지하면서 빛을 살리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마라톤 한국 최고 기록은 2시간 7분 20초. 이봉주가 2000년 2월 13일 도쿄 마라톤 때 세운 것이다. 마라톤 세계기록이 당시 2시간 5분 42초였다가 지금은 2시간 1분 39초까지 단축됐지만 한국은 뒷걸음질만 하고 있다. 당면 과제는 2시간 10분 벽을 다시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 만난 양재성(88) 대한육상연맹 고문은 “한국 마라톤 현주소에는 번지수가 없다.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지난해 춘천 마라톤 남자부 우승자 박민호(24)가 올 3월 서울 국제 마라톤에서 11분대를 기록한 게 그나마 고무적이지만, 다른 선수들은 모두 15분대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2시간 10분 이내는 2019년 10월 경주 국제 마라톤에서 케냐 귀화 선수 오주한(吳走韓·35·청양군청)이 달린 2시간 8분 42초가 유일하다.

그래픽=김현국

얇은 선수층은 고민거리다. 현재 육상부를 보유한 국내 85개 실업팀 중 중장거리 선수가 있는 곳은 42개. 등록 선수 566명 중 중장거리 선수는 남녀 합쳐 267명. 이 중 마라톤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선수층이 얇으니 경쟁 자체가 없고, 어려운 경쟁을 거쳐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도전을 피하는 게 현실이다. 양 고문은 손기정·남승룡(1세대), 서윤복·함기용(2세대)에 이은 한국 마라톤 3세대.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1~1996년 춘천 마라톤 해설자로 활동했다.

그는 침체기 한국 마라톤을 되살리기 위해 역전 마라톤 대회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5년 창설된 경부역전마라톤 1회 대회 출전 멤버로서 “6·25 이후 명맥이 끊어지는 듯했던 한국 마라톤이 되살아났던 건 역전 마라톤을 통해 재능 있는 장거리 유망주들이 많이 발굴됐기 때문”이라며 “짧게는 5㎞, 길게는 10~15㎞ 거리를 하루이틀 정도 쉬면서 열흘 동안 매일 뛰게 되면 의욕이 생기고 자신감을 갖게 되며, 그런 가운데 마라톤 유망주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영조와 이봉주도 역전 마라톤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일본만 해도 역전 마라톤 대회가 25개 안팎이에요. 군 단위 대회만 열려도 지역 주민들이 길가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죠. 새해 이벤트로 열리는 하코네 역전 마라톤은 대학 선수들이 겨루는 대회인데 1920년 창설돼 지금까지도 국민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어요. 육상이 스포츠의 기본이라는 걸 아니까 그만큼 대접받는 거죠. 우리는 체전 소모품이나 마찬가지예요. 체전에서 메달만 따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것도 몇 년 지나고 한계에 이르면 그냥 쫓겨나는 거죠.” 국내에서 가장 큰 대회였던 경부역전마라톤은 2016년 62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됐고, 현재 남아있는 대회는 코오롱 고교 구간 마라톤, 통일 역전 마라톤 등 소수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마라톤 강국 선수들을 조기 유학 형식으로 데려오는 방법도 부흥책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일본은 어린 아프리카 선수들을 장학금까지 주면서 중고등학교에 데려옵니다. 귀화시키는 게 아니라 일본 선수들이 같이 뛰면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우리처럼 외국 선수를 귀화시키는 건 미봉책일 뿐이에요. 한때 국내 선수들이 아프리카로 전지훈련을 가기도 했지만, 풍토병 같은 환경적인 여건 때문에 역효과만 났습니다.”

양 고문은 아직 한국 마라톤은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박민호는 중국에서 케냐 출신 페이스 메이커와 훈련하고 있는데 기록이 많이 단축됐다고 한다. 현재 2시간 10분 13초가 최고 기록인데 10분대 돌파를 욕심낼 만하다.

“한국 마라톤이 이렇게 된 데는 저 같은 선배들, 그리고 지도자 책임이 커요. 마라톤 거름 역할을 하는 역전 대회가 하나둘 없어지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못했죠. 황영조를 키운 정봉수(2001년 별세)같이 마라톤에 인생을 바친 독종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자 대우가 좋아졌는데 정신은 오히려 나태해진 게 아닐까요? 누군가 도화선에 불을 댕기면 다시 마라톤이 살아날 힘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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