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현장] 이젠 팬이 원하는 감독을 보고 싶다
지난 12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경기는 부산이 낳은 불세출의 ‘야구 영웅’ 고 최동원 선수를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로 진행됐다. 최동원의 12주기를 맞아 이날 롯데 선수들은 생전 그의 등번호인 ‘11’이 새겨진 패치를 유니폼에 부착한 채 출전했다. 경기 전 전광판에는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롯데가 팀의 ‘레전드’를 기려 이 같은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41년 역사를 가진 KBO리그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최동원과 롯데를 사랑하는 오랜 팬들에게 이 행사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생전 롯데 유니폼을 입고 사직구장에 서기를 꿈꿨던 최동원을 화면을 통해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최동원은 ‘선수협 파동’으로 구단에 미운털이 박혀 삼성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이후 2011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다시는 롯데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선수는 물론 지도자로서도 마찬가지다. 한화 투수코치와 2군 감독을 맡은 것이 지도자 경력의 전부다. 선동렬과 함께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그이기에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동원이 끝내 사직야구장으로 돌아오지 못한 데에는 롯데 구단의 책임이 가장 크다. 최동원은 생전 여러 차례 롯데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화 코치로 사직구장을 찾을 때면 부산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많은 팬들은 구단에 부산의 영웅을 감독으로 데려와 달라며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는 최동원과 팬들의 바람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동원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보복성 트레이드의 당사자였던 김시진 전 감독을 새 사령탑에 앉혀 다시 한번 팬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롯데는 1992년 이후 무려 30년 동안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현존하는 KBO리그 구단 중 롯데보다 오랫동안 우승을 못한 팀은 없다. 물론 직접 경기하는 선수들의 기량이 우승에 미치지 못한 해도 있었으나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강팀으로 만든 감독이 없었다는 점이 더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 역시 롯데 구단의 책임이다.
역대 롯데 감독 중 ‘우승 청부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리그 최강 전력을 갖추고도 번번이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삼성이 김응룡 감독을 데려와 2002년 창단 첫 우승을 달성했고, SK(현 SSG)가 김성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자 마자 2007년 첫 우승을 일군 것과 롯데의 행보는 크게 달랐다.
롯데에는 ‘스타 감독’도 없었다. 역대 감독 중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구단 첫 외국인 사령탑인 제리 로이스터다. 로이스터 시절에도 롯데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팬들은 그의 화끈하고 선이 굵은 야구에 환호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뒤 ‘롯데 감독 흑역사’는 반복됐다. 우승 경험이 있는 지도자도, 최동원과 같은 스타성을 겸비한 사령탑도 롯데에는 없었다. 골수팬들은 “롯데가 프런트 입맛에 맞고 말 잘 듣는 감독만 데려와 팀이 이 지경이 됐다”고 한탄한다.
최동원이나 김응룡, 김성근에게 감독을 맡겼어도 롯데가 우승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야구 팬인 부산시민의 자부심은 지켜줄 수 있었다. 성적이 좋지 못해도 팬들의 요구를 수용한 구단은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도 있었을 터다.
올해도 가을야구를 남의 집 잔치로 구경해야 할 처지에 놓인 롯데다. 하루빨리 새로운 사령탑을 선임해 팀을 추스르고 내년 시즌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다. 팬들은 최동원처럼 부산 야구를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나 강력한 리더십과 지도력으로 팀을 이끌 우승 청부사를 원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하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이번에야 말로 팬들의 요구를 수용할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릴 지 롯데의 선택만 남았다.
이병욱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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