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98] 영화 ‘밀수’에서 듣는 그때 그 노래

장유정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원장·대중음악사학자 2023. 9.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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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리고 진심을 전하기까지 얼마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까?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는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의 우정과 의리를 다룬 ‘버디 무비’로도 읽을 수 있다. 다방 마담과 해녀들까지 마음을 모아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가는 모습에서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연대 의식도 엿볼 수 있다.

해녀들의 활동 무대인 바닷속 풍경에서 청량감을 맛볼 수 있는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다.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노래들 덕분에 보는 재미에 더해 듣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 영화에서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장기하의 선곡은 주효했다. 바다 장면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김트리오의 ‘연안 부두’를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노래가 그 시절 감성을 끄집어내 영화 분위기를 적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의 재킷과 나팔바지를 온전히 한 벌로 입는 대신 상의와 하의를 엇갈리게 나눠 입은 장면은 춘자와 진숙의 남다른 우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흘러가는 구름은 아니겠지요”라며 각자 흥얼거리는 최헌의 ‘앵두’는 오해로 생긴 둘 사이의 균열을 예고하기도 하고, 진실 앞에서 갈등하는 심정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주요 장면마다 나오는 노래는 영화의 흐름과 잘 어우러져 깊은 묘미를 자아낸다.

영화에서 울려 퍼지는 펄시스터즈의 ‘님아’,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김정미의 ‘바람’은 모두 신중현이 작사하고 작곡했는데, 음악성이 뛰어나 197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75년의 가요 정화 운동과 대마초 파동으로 된서리를 맞아 크게 위축된 대중음악 분야에 록트로트가 막 자리를 잡는다. 송대관의 ‘해 뜰 날’을 시작으로 ‘연안 부두’ ‘앵두’ ‘나미와 머슴아들’의 ‘행복’과 ‘미운 정 고운 정’ 등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음악성에 대중성마저 확보한 노래들이다. 영화 개봉 이후 이 노래들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니, 영화의 파급력과 대중음악의 강한 생명력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는 1978년 제7회 동경 국제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은 노래다. 비장함을 풍기는 이 노래는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진심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더라도 이 길을 계속 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상하지. 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라고 한 최승자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른다. 힘들더라도 계속 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밀수’에서처럼 우정과 의리로 함께할 든든한 친구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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