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 판치는 세상서 숨어버린 지식인, 다시 파수꾼으로 나서야
코로나라는 긴 터널의 끝이 보이던 지난해 가을, 송호근(67) 한림대 석좌교수는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지성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공론장은 여전히 소란스럽지만, 괴담과 진실이 엇갈리고 이념적 정쟁이 난무할 뿐 중심을 잡고 결연한 목소리를 내던 지성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깨달음이었다.
송 교수가 최근 낸 ‘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나남출판)은 지식인의 날 선 자아비판과도 같은 책이다. “민주화가 한국의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이토록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신문로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난 송 교수가 탄식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상황 속에서, 사서 욕먹고 싶지 않은 지식인 그룹은 입을 다물었다. 고도로 전문화된 사회에서 이슈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갖가지 주제들을 모두 감당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는 “한국의 공론장은 사상과 고뇌의 깊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가짜 뉴스와 왜곡된 정보들이 판치는 활극과 난무(亂舞)의 공론장에서 정작 파수꾼은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존경받던 원로들은 퇴직했고, 그 자리를 새로 채워야 할 ‘매의 눈과 총체적 분석력을 갖춘 지식인 집단’은 희미해져 버렸다.
교수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지난 20년 동안 강화된 대학 경쟁력의 레이스에서 교수들은 논문 제조기가 돼 버렸다”고 했다. 제 길을 찾아 간 게 아닌가? “학자적 소명을 내려놓고 월급 생활자가 된 것입니다. 대중매체를 버리고 전문 학술지로 은거했다는 건, 소품종 한정 판매물만 내놓는 수공업자로 전락했다는 의미죠.”
이제 첨단 과학의 물결이 다시 인류사를 뒤바꿀 문명 대변혁의 국면에 와 있는데도 지식인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과거에 (지혜의 상징인)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깔리면 날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날이 새도록 나뭇가지에 앉아 두리번거릴 뿐이다. 그러는 사이 공론장엔 여행·취미·상담 전문가, 정치 평론가와 해설가, 이념 투사, 프로파일러 같은 온갖 유형의 변사(辯士)들이 진을 치게 됐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문가가 정치인에 의해 ‘돌팔이’로 몰리는 현실에 맞서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송 교수는 말했다. 그는 “결국 한국의 모든 쟁점은 두 개의 단절선에 갇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대한해협’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역사적 단절선이며 또 하나는 ‘휴전선’이라 할 수 있는 군사적 단절선이다. “지식인들이 이 두 선을 뛰어넘고 혼돈의 공론장으로 과감히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주도했던 20세기 문명 대신 오픈AI와 챗GPT로 상징되는 21세기 문명을 수용해야 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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