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만에 오대산 돌아오는 조선왕조실록 감격”
“일제가 가져갔던 실록-의궤 등
‘수호총섭’ 월정사 나서는게 당연”
보관 위한 박물관 11월 개관
강원 평창군 월정사에서 11일 만난 대한불교조계종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2006년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은 뒤에도 17년 동안이나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실록을 이제야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불교 용어)한다”며 “20년 가까이 실록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했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고 했다.
―민간이 나선 이유가 있습니까.
“1965년 한일협정에 포함되지 못한 문화재는 사실상 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했으니까요. 한일협정 당시에는 도쿄대에 오대산 사고본 47책이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그래서 국가는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반환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소송 등 모든 방법을 다 쓰려고 했지요. 그런데 도쿄대에서 약탈 문화재를 두고 소송까지 가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당시 한일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도쿄대가 기존 27책이 있는 서울대에 두 나라 국립대학 간 학술교류와 협력 차원에서 47책을 기증하는 형식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2006년 3월 위원회 구성 석 달여 만에 이룬 쾌거지요.”
―조선왕실의궤 반환 운동도 하셨더군요.
“오대산 사고에는 조선왕실의궤도 있었는데, 일제가 1922년 반출해 갔습니다. 의궤가 일본 왕실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실록을 돌려받은 뒤 바로 다시 2006년 의궤 환수위원회를 발족해 반환 운동을 펼쳤지요. 그리고 2011년 82책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둘 다 바로 월정사로 오지 못한 겁니까.
“불교계와 민간단체들은 환지본처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오대산에 보존·관리할 시설이 없다는 것과 연구 등을 이유로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키로 했지요. 그래서 월정사에서 2019년 지상 2층 규모의 국립 조선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환지본처는 지지부진했는데, 지역사회가 나서고 국회에서도 촉구 결의안을 내는 등의 노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겁니다. 서울대에 있던 27책, 우리가 돌려받은 47책, 이후 문화재청이 매입한 1책 등 실록 75책과 의궤 82책입니다.”
―왜 그렇게 반환 운동에 적극적이셨던 겁니까.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말이 있지요. 인연이 없는 사람도 나설 일인데 월정사는 오대산 사고본이 있던 곳이고, 역대 월정사 주지에게는 실록을 지키는 ‘실록수호총섭(實錄守護摠攝)’이라는 벼슬까지 내려졌습니다. 제가 안 나서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11월 9일 개관식을 열 예정이어서 박물관 리모델링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꼭 오셔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평창=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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