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야성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보행 능력을 잃었다. 보조기구에는 바퀴가 달렸는데 단독주택은 문턱 때문에 사용할 수 없어 가까운 아파트를 월세로 얻어 이사했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지은 51년 된 주택을 떠나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나를 믿고 어머니를 맡겼는데 저승에 가서 어떻게 아버지를 뵐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아파트로 이사 온 후 매일 아침 본가에 신문을 가지러 간다. 단독주택에서는 다섯 가구와 교류했는데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쓰는 집이 20가구나 된다. 변화무쌍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때를 만나고 운명을 만난다. 여기는 또 어떤 만남이 있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신문 가지러 걸어가는데 어떤 중년 남자의 엄지가 없는 오른손을 봤다.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그의 아픔을 생각했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 석가세존은 인생의 참모습을 고통이라 했다.
보도블록 틈에 자생하는 잡풀을 본다. 소복한 꼬리털 같은 강아지풀, 바닥에 납작 엎드린 바랭이, 무조건 타오르고 보는 환삼덩굴까지 보인다. 이런 야생은 오랜 세월 한정된 물을 갖고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하면서 강한 면역력이 형성된 것이다. 은행나무가 지구에 태어난 것은 고생대 페름기로 2억9천만년 전이며 지구에 초원이 등장한 것도 신생대 3기로 6천500만년 전이다. 그에 비해 인간은 어떠한가? 최초의 어정쩡한 직립을 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태어난 것은 300만년 전이고 크로마뇽인 같은 현생인류가 태어난 것은 겨우 3만~4만년 전이다. 지구의 모든 식생이 인간보다 훨씬 선배다. 그들은 온갖 환난을 거쳤고 여러 번의 빙하도 견뎠다. 그런 와중에 모든 질병에 대한 면역이 생긴 것이다. 그들에게 선배 대접을 해야 한다. 나는 인간과 함께 지구에 생명을 붙이고 있는 식생도 우리의 형제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환절기가 되면 집안 식구 전체가 콧물을 줄줄 흘리는데 가족 중 비염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 어머니다. 충청도 두메산골의 내 어린 시절은 야성의 계절이었다. 어머니는 그 야성의 시간이 나보다 25년 더 길다. 강아지풀, 바랭이, 까마중의 야성이 어머니에게 깃들었기를 소원한다. 엄지손가락이 없는 사내도 생각한다. 내게 어머니의 치매는 맞서기 힘든 적이다. 모란을 좋아하는 93세 야성의 어머니, 본가에 아버지가 심은 30년 된 모란이 있다. 모란을 일곱 번만 더 보게 해주면 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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