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호의 위스키디아] 나 위스키 좋아하네?
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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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옷장이 술장으로 변했다. 사고 마시고 비우고, 또 사고 마시고 비우고. 어느 순간 마시는 속도가 술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느 날 잠깐 정신 차리고 술병을 세어봤다. 100병이 넘었다. 조심스럽게 옷장을 다시 닫았다.
회사 입사 후 소맥만 주야장천 말았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말면 얼마나 맛있겠는가. 엉망이었다. 맛없게 말아진 술은 스스로 해결했다. 다음날 숙취는 덤. 5년 차가 넘어가니 주변에서 마실만하다는 평을 받았고 10년 차 때는 너도나도 말아 달라고 잔을 들이민다. 앉은뱅이 술을 제조하는 연금술사가 됐다. 다 좋은데 다음날 숙취는 견딜 수가 없다. 전날 밤에 좀 놀았다고 이렇게까지 고통받을 일인가. 머리 안 아프고 맛있는 술은 없는 걸까? 그때 발견했다. 위스키를.
◇생각보다 간단한 위스키 재료
숙취의 원인은 독소인 아세트알데하이드 성분이 신경을 자극하고 두통과 메스꺼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소주나 맥주가 한두 잔으로 끝나나?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결국 술이 술을 먹는다. 숙취는 본인이 마신 알코올의 총량에 비례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유통되는 위스키 한 병에 담긴 양은 700mL다. 미국의 경우 750mL, 몰트 바에서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위스키 한잔의 양은 30mL다. 병당 대략 23~24잔이 나온다. 위스키는 도수가 최소 40도 이상이다. 두세 잔, 많게는 다섯 잔이면 적당히 기분이 좋다. 소맥처럼 들이붓는 것도 아니니 숙취도 없는 편이다. 와인은 따면 하루 이틀 안에 다 마셔야 한다. 위스키는 한두 잔만 마시고 뚜껑 닫고 일 년 뒤에 마셔도 무관하다. 이쯤 되면 다른 술에 비해 가성비가 좋을 지경이다.
위스키 제조에 필요한 재료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곡물, 물, 효모 그리고 오크통이 전부다. 곡물을 발효해서 증류 후 오크통에 넣어 숙성하면 그게 바로 위스키다. 즉 맥주를 증류해 숙성시키면 위스키가 된다.
평소 위스키에 대한 개념만 있었지 즐기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위스키에 빠지게 된 계기는 ‘라프로익 10년’이다. 인간의 혀는 오미(五味)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맛을 느낀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라프로익은 ‘혀에 6번째 맛을 느끼는 부분이 있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6번째 감각을 일깨운 ‘라프로익 10년’
라프로익을 입에 댔던 첫 잔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사제인 정로환과 소독약 맛이 뒤엉켜 혼란스러웠다. 향에서는 병원 냄새가 나고 입안은 재로 변했다. 심지어 장작 맛은 다음 날 아침까지 숨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좋다. 증류소 슬로건도 ‘Love it or Hate it’이다. 슬로건 처럼 이 술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지금은 이 맛에 산다.
라프로익은 게일어로 ‘드넓은 만의 아름다운 습지’를 의미한다. 1815년 설립된 라프로익 증류소는 위스키 성지로 불리는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에 있다. 이 지역 위스키의 핵심은 ‘피트(Peat, 이탄)’다. 피트는 ‘석탄화’가 되지 못한 습지에 축적된 풀이나 이끼 등의 퇴적물을 말한다. 석탄이 되기 전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피트는 일반 석탄 연료와 다르게 수분이 많기 때문에 젖은 장작을 태울 때처럼 오래 타고 연기도 많이 난다. 이때 발생되는 연기로 보리를 건조하면 피트 특유의 풍미가 배어 소독약이나 요오드, 정로환 같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위스키는 한 때 의약품으로 취급됐다. 실제로 미국 금주법(1911~1933)이 발효되던 시절, 스코틀랜드가 ‘의약품’ 라벨을 달고 미국으로 위스키를 수출했다. 당시 세관원들도 피트 위스키 맛을 보고 이것이 의약품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라프로익 제품을 구매하면 증류소 부지중 1제곱(30cm*30cm) 피트의 땅문서를 받을 수 있다. 위스키 케이스 안에는 아일라 섬 여권이라고 적힌 종이가 들어있다. 이 안에 있는 시리얼 번호를 라프로익 홈페이지에 등록하면 구글맵에서도 검색 가능한 증류소 땅 주인이 된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임대료를 높이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연간 임대료는 증류소 방문 시 제공되는 위스키 한 잔. 일종의 마케팅이지만 라프로익 증류소가 내 땅을 빌려 쓰는 셈이다.
위스키를 ‘양주(洋酒)’라고 많이 불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양주란 사전적인 의미로 ‘서양에서 제조한 술’. 증류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지금처럼 서양 주류 문화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 주종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 보드카, 데킬라, 위스키, 브랜디, 럼 등을 모두 양주라고 부른다. 모든 위스키는 양주지만, 모든 양주가 위스키는 아니다.
위스키, 참 맛있고 재밌다. 혼자만 알기는 아쉬워 독자분들의 취향을 찾는 데 참고가 될만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취향을 찾아가는 지름길이 있다면 한 번쯤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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