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단식' 이재명과 '관망' 김기현의 '명분 방정식'

조성은 2023. 9.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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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도, 출구전략도 없는 이재명의 단식
'이념 전쟁' 국민의힘, 극우 이미지 벗어나야

1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이 14일째 이어지면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만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권회복과 강화를 위한 국민의힘·교원단체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에 대한 국민의힘의 반응을 요약하자면 '어쩌라고'라 할 수 있겠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딱히 만류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은 '어차피 단식의 진짜 목적이 정부·여당이 아니라 민주당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표의 단식은 체포동의안 청구를 앞둔 데다 9월 정기국회가 막 시작하는 때였다. 자연스럽게 체포동의안이 떠오른다. 지난 체포동의안 부결로 민주당에는 '방탄'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계파 갈등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로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게다가 이 대표 스스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으니 이대로 가면 이번 체포동의안은 가결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단식의 진짜 목적은 당 내부 결속과 지지층 결집, 결국 방탄이라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이 대표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제해양재판소 제소와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개각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시기가 시기인지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체로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다만 실익은 확실하다는 평가다. 당내에서 이 대표에 비판적이던 비명계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단식 중에 두 차례 검찰에 소환된 모습에 동정론도 있다. 당 지지율도 올랐다. 결집효과가 확실히 있는 셈이다.

단식의 명분을 어떻게 생각하든, 이 대표가 단식에 나서기까지 국민의힘이 대화를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사법리스크 공세와 지난 정부 탓하느라 1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이제는 '파행'이 자연스러운 상임위원회 회의, 번번이 엎어지는 여야 합의, 본회의 직회부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공산전체주의'라고 야당을 겨냥하고 철 지난 이념을 꺼내 들기에 이르렀다. 집권 여당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윤 대통령이 야당에 날을 세우면서 여당 역시 협치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무기한 단식 14일차에 접어든 이재명 대표가 13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초선 의원들을 만나 손을 잡고 있다. /이새롬 기자

그래서인지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단식에도 명분이 없다며 만류할 이유도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이 대표의 단식을 여전히 '방탄'으로 규정하며 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국을 해결하려는 노력은커녕 연일 거친 말, 그리고 조롱과 야유를 쏟아내고 있다. 어쩌다 우리 정치가 예의와 품격까지 상실했나 싶다.

YS(고 김영삼 전 대통령)가 단식할 때 여당인 민정당 권익현 사무총장이,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투쟁 때는 민자당 대표인 YS가 찾아가 위로했었다. 아주 옛날의 일도 아니다. 지난 2019년 11월,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의 단식 투쟁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황 대표를 찾아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이제 지나간 옛 '낭만'일 뿐이다.

그만큼 우리 정치가 양극단으로, 진영 논리에 빠졌다는 방증일 테다. 여당의 외면 속에서 이 대표가 단식을 이어가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금의 태도만 놓고보면 여야 모두 각자 지지층으로만 총선을 치르고 싶은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13일이자 이 대표의 단식이 14일차에 접어든 이날, 김 대표가 이 대표가 아닌,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이 대표의 단식이 국민의힘에 득도 실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단식이 장기화할수록 국민의힘에도 부담이 될 것은 자명하다. 단식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끝난다. 그때까지 여당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김 대표가 이 대표를 찾아간다면 어떨까. 여당 대표로서의 아량, 인간으로서의 도의로 말이다. 적어도 정치혐오의 시대에, 중도층에게 여당이 야당에 먼저 손 내미는 모습은 의미있다. 특히 이념 전쟁으로 극우 이미지가 씌워진 국민의힘에게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김 대표에게는 이 대표에게 부족한 명분도 충분하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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