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살인 1년②] 뼈아픈 검경·사법부 오판…피해자 보호 '구멍' 여전
'반의사불벌 폐지' 스토킹처벌법 통과
긴급응급조치 위반 양형 낮아 효과 의문
전자장치 부착 사전심문 피해자에 부담
지난해 9월14일 서울지하철 신당역에서 전주환이 회사 입사 동기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씨는 피해여성을 집요히 스토킹한 끝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1주기를 맞아 정부와 경찰 등 당국이 강구한 대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효과는 나타나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전주환(32)에 적용된 죄명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살인)' 혐의 등이다. 해당 혐의는 자기 또는 타인 형사사건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해 보복의 목적으로 살인죄를 범하면 적용된다.
전주환은 입사 동기였던 피해자가 2021년 10월 본인을 불법 촬영 혐의로 고소하고, 이듬해 2월 스토킹 혐의로 추가 고소하면서 기소돼 징역 9형을 구형받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전문가들은 경찰, 검찰 등 관계기관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전주환 사건에서 관계기관은 '피해자 보호'에 실패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를 개선하고자 국회는 지난 6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고 잠정조치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신설 등을 도입하는 내용 등이다.
당시 경찰과 검찰, 법원은 가해자 신병 확보 필요성을 놓고 오판했다. 1차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피해자는 2차 고소했으나 당시 경찰은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적극적 잠정조치·긴급응급조치…위반 행위는 여전
고소장을 받은 경찰은 안전조치·잠정조치를 안내했으나 피해자가 원치 않아 진행되지 않았다. 다만 수사·재판 과정에서 전주환은 구속되지 않았고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발생 초기 조치하는 잠정조치·긴급응급조치 신청·인용은 꾸준하지만, 위반 사례도 만만치 않다.
경찰청은 신당역 사건 이후 "긴급응급조치를 활용하고, 실효적인 잠정조치 4호(유치장 유치) 활성화를 추진하겠다. 보복·위해 우려 사건에 구속영장 신청 및 잠정조치 등을 면밀히 검토하겠다. 위험성 공유와 잠정조치 신속성 향상 등을 위해 경-검 협의체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잠정조치·긴급응급조치 위반 건수는 각각 364건·189건이다. 경찰 신청으로 법원 명령까지 내려진 잠정조치를 불이행해 재판에 넘겨지기는 하지만, 양형이 낮아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7월 인천 남동구 한 아파트에서 설모 씨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과거 연인 30대 여성 이은총 씨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설 씨는 지난 6월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 2·3호를 받았으나 위반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최근까지 잠정조치 불이행 사건 64건 1심 양형을 살펴보면 △징역형 집행유예 41건(64%) △벌금형 11건(17%) △징역형 10건(16%) △벌금형 집행유예 2건(3%)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사법부의도 문제 인식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봤다.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담은 스토킹처벌법 개정에 따라 잠정조치 유형으로 전자장치 부착도 도입됐다. 다만 부착 조치 결정 전 법원이 검사와 가해자, 피해자 등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사전 심문절차'가 도입됐다. 이 절차가 피해자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지난 7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양형연구회 공동 심포지엄 '스토킹범죄와 양형'에서 이같은 의견이 나왔다. 별개로 전자장치 부착뿐만 아니라 유치 역시 심문 절차가 진행되는데, 구속영장 기각 이후 범죄가 이어진 사례도 있는 만큼 절차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최한얼 인천지검 검사는 심포지엄에서 "범죄 특성상 실시간으로 지속·반복될 위험성과 강력범죄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결정이 지연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우려스럽다"라고 봤다.
◆ '스토킹행위' 정의 협소 논란…명확성 원칙 위반 우려도
여성가족부는 신당역 사건 이후 스토킹과 스토킹행위자, 피해자 용어를 정의하고자 했다. 다만 현재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은 행위를 기준으로 정의됐다.
법률상으로는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상대방의 동거인, 가족에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일상생활 장소 또는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글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등"으로 정의한다.
일각에서는 낯선 사람이 저지르는 스토킹을 전제로 구성돼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 대체로 위험성이 높지만, 법률상 정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송란희 상임대표는 "스토킹범죄는 어떻게 볼 것인가에 문제"라며 "경찰과 검찰, 법원, 관련 부처 등 모든 기관이 그저 거친 행위로 보는 시각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외부에서 문제를 지적하니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대응만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포괄적으로 정의를 규정하면 수사기관과 법관 자의에 따라 기소돼 처벌받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여러 조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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