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치지’ 가족과 작별 앞둔 美… 51년 만에 저무는 ‘판다 외교’[글로벌 현장을 가다]
하지만 샤오치지와 그의 엄마 아빠인 메이샹, 톈톈은 올해 말이면 중국으로 돌아간다. 중국 정부가 스미스소니언 동물원과 맺은 임대 계약이 12월 만료되지만 계약 연장이 더 이상 논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즈 씨는 “매일 샤오치지의 모습을 보길 원하는 팬들이 중국에도 정말 많다”며 “아쉽지만 이제 샤오치지 가족을 보내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 美 판다 모두 中 귀환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은 이달 23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판다 팔루자’라는 행사를 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던 2020년 기적처럼 태어난 샤오치지와 23년간 국립 동물원의 간판스타였던 메이샹, 톈톈과의 기념 촬영, 콘서트, 그림 그리기, 공예품 만들기 등 대규모 작별 행사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판다 팬인 워싱턴 주민 멜린다 씨는 “연말이면 판다가 미국에 한 마리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 무척 슬프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물원에 오면 늘 판다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제 다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볼 때 판다가 다시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암컷 메이샹과 수컷 톈톈이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것은 2000년 12월. 이들 판다는 당초 10년간 미국에 머물 계획이었지만 7마리의 새끼를 낳으면서 두 차례에 걸쳐 대여 기간이 연장됐다. 2005년 첫째 타이산, 2013년 둘째 바오바오, 2015년 셋째 베이베이를 낳았고 이들 새끼 판다 3마리는 각각 네 살이던 2009년, 2017년, 2019년 차례로 중국에 돌아갔다.
이에 따라 내년이면 미국은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방중으로 시작된 ‘판다 외교’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닉슨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부인 팻 닉슨 여사가 베이징 동물원에서 판다를 보며 감탄하자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링링과 싱싱 두 마리를 미국에 보냈다. 이후 미국에선 수만 명이 판다를 보기 위해 동물원에 몰리는 등 열풍이 불었다. 링링이 1992년, 싱싱이 1999년 사망하자 중국은 이듬해 메이샹과 톈톈을 미국에 보냈다. 중국은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멤피스 동물원에도 판다를 임대 형식으로 보냈지만 각각 2019년과 올해 이들 판다는 모두 중국으로 귀환했다.
미중 관계 풍향계 된 판다
미국과 중국은 판다 관리를 두고 여러 차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멤피스 동물원의 판다 야야와 러러 학대 논란이 일면서 이들 판다를 중국으로 돌려보내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특히 2월 러러가 돌연사하면서 동물원 측과 중국 판다 팬들 사이에선 사망 책임을 두고 갈등을 벌이기도 했다.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의 판다 메이샹 역시 중국의 판다 팬들이 조기 반환을 요구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2020년 스미스소니언 동물원 판다 우리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판다 캠’을 지켜보던 중국 팬들이 동물원 측의 관리 소홀로 메이샹이 경련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며 ‘메이샹 구하기’ 운동에 나선 것. 이들은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판다 임대 계약 연장 반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중 데탕트의 상징이었던 판다가 모두 중국으로 돌아가게 된 데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히 악화된 미중 관계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판다는 때로는 외교 갈등의 불씨로, 어떨 땐 해빙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미중 관계의 풍향계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의 회담을 결정하자 중국 정부는 미국에서 태어난 판다 두 마리를 중국으로 귀환시켰다. 하지만 이듬해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미중 화해 무드가 본격화되며 중국은 미국에 대한 판다 대여를 5년 연장했다. 이어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는 2015년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서 태어난 베이베이의 이름을 함께 지어 주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백악관 정례브리핑에서는 판다 귀환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대면 정상회의를 추진하는 가운데 한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판다들을 미국에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은 것. 이에 대해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판다는 연말에 중국으로 떠나야 한다”고 했다.
외교 불화에 ‘판다 외교’ 종언
핀란드 등 일부 국가에선 임대 기간이 종료되기 전 중국에 판다를 조기 반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매년 중국에 내야 하는 번식 기금 100만 달러(약 13억 원)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핀란드는 2017년 시 주석의 방문에 따라 판다 보호협약을 체결하고 2018년 15년 임대 계약을 맺고 판다 두 마리를 받았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대표했던 판다 외교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의 판다 외교는 1989년 톈안먼 사태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직후 활발해졌다고 분석한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는 데 활용됐던 판다 외교가 미중 갈등 속에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케리 브라운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는 프랑스24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권 문제, 경제적 강압 등 현안으로 중국과 서방이 건전한 대화를 나누는 게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며 “불화의 크기를 고려할 때 판다는 너무 미약해 보이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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