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동선·내용 모두 비밀…끝까지 수수께끼 같았던 북러 회담
회담 결과 발표도 생략…퍼즐하듯 정상들 발언 맞춰가며 전망 분석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인영 최수호 특파원 = 4년 5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재 성사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끝까지 철통같은 보안 속에 진행됐다.
서방에 미리 계획이 노출됐던 탓에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일자와 회담 장소 선정 작업은 막판까지 극비리에 이뤄졌다.
또 회담 결과에 대한 공식 발표도 생략한 까닭에 국제사회는 마치 퍼즐을 하듯 북러 정상이 내놓은 발언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유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달 초 서방은 김 위원장이 이달 10∼13일(현지시간) 동방경제포럼(EEF) 기간에 행사 장소인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무기 거래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후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 분야에서 밀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가운데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국제사회에서 드물게 공개적으로 러시아 편에 선 북한은 작년 말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한 러시아 민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에 무기를 전달했다는 의심을 받은 바 있다.
북한은 이러한 무기 밀거래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면서도 최근 들어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런 와중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도 지난 7월 북한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 행사에 맞춰 푸틴 대통령 친서를 들고 방북하는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이 같은 북러 양국의 군사 협력 강화 조짐에 서방이 바짝 촉각을 곤두세운 까닭에 김 위원장의 러시아 재방문은 마치 첩보작전을 하듯 고도의 보안 속에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북러 양국은 서방이 김 위원장의 러시아 재방문 시기로 관측했던 EEF 개막 당일인 지난 10일까지도 그 진위를 확인하는 공식 발표를 내놓지 않았다.
북러가 양국 정상의 만남을 공식화한 것은 다음날인 11일 오후로 그 시각 김 위원장 전용 열차는 이미 북한 내에서 러시아를 향해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북러 정상이 만날 것이라는 발표만 나왔지, 회담 일자와 장소 등은 여전히 불명확했다.
이에 다수 전문가는 김 위원장 경호 문제와 EEF 본회의에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는 점 등을 고려해 이번 정상회담이 12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 전용 열차는 12일 오전에서야 북러 접경지인 연해주 하산역을 통과했으며,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따라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하며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나는 행보를 보였다.
이런 와중에 당일 오후 늦게서야 정상회담 장소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1천㎞ 떨어져 있는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윤곽이 잡혔다.
푸틴 대통령 역시 EEF 본회의 종료 후 밤늦게 은밀히 이곳으로 이동했다.
또 러시아 현지 매체 대부분이 김 위원장 전용 열차 이동 상황을 보도하지 않았던 까닭에 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는 간간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오는 영상 등으로만 김 위원장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13일 북러 정상회담은 성사됐지만, 이날 4시간여 동안 진행된 정상 간 대면 후 현재까지 구체적인 회담 결과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이 필요성을 느끼는 첨단 군사 기술이 집약된 장소에서 북러 정상이 손을 맞잡은 점과 회담에서 나온 여러 우호적인 발언 등을 고려할 때 향후 러시아가 국제사회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공위성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북한이 필요로 하는 협력에 나설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북한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대립 중인 러시아를 여러 방법을 동원해 도울 것으로 예상된다.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관계자들은 "서방이 우려하는 북러 간 군사 밀착이 어디까지 이뤄질지 분석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향후 러시아와 북한 매체들이 다루는 소식 등을 통해 이번 회담 결과를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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