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민의 코트인] 2023년에도 계속되는 부산중앙고의 ‘리바운드’
“천기범, 천기범...”
13일, 전라남도 땅끝 마을 해남 우슬체육관. 아마추어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관중석에선 낯익은 프로 선수의 이름이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단연, 그 주인공들은 천기범이 이전에 몸담았던 부산중앙고 후예들이었다.
부산중앙고의 첫 경기가 펼쳐지기 전까지, 앞서 열렸던 남고부 경기는 총 8경기. 모든 경기가 대중들의 관심과 열띤 응원을 받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한국 농구 현실이 그렇지 않다. 3학년이 대학으로 진학한 뒤, 새 얼굴이 보이는 춘계보다는 추계가 대회 흥행 부분에서 아직까진 아쉽다는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어떠한 경기는 땅끝마을임에도 불구하고 필자 눈앞 관중석의 절반이 차기도 한다. 심지어 프로 경기에서 볼 수 없는 손수 제작 단체 클래퍼에, 프로를 방불케하는 응원전까지 펼쳐진다.
반대로 어떠한 경기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 벤치의 주문사항, 선수들의 커뮤니케이션적인 부분까지 고스란히 들릴 때도 있다. 2023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리바운드의 주인공, 부산 중앙고와의 경기가 그러했다.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부산중앙고만큼은 아니지만 가용 인원을 타 수도권 농구부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적었다. 그러나 예선 첫 경기에서 부산중앙고는 영화와는 다르게 청주신흥고를 100-63으로 대파했다.
그리고 부산중앙고의 중심을 잡으며 당시 천기범을 연상케 했고, 연호하게 했던 5번, 정명근의 플레이에 리바운드 대사가 떠올랐다.
“경기 전체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못하면은 아이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돼”
정말로 정명근의 눈빛 하나, 지시 하나에 부산중앙고 선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정명근이 말했다.
“연습을 진짜 빡세게 준비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노력이 더해졌지만, 약육강식의 세계로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마추어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두 번째 상대였던 서울에서 이름 좀 휘날리는 휘문고와의 경기까지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부산중앙고는 이날도 청주신흥고와의 경기와 비슷하게 플레이를 이어갔다. 야전사령관을 담당한 정명근은 3학년 선수들이 없는 가운데, 중심을 잡고자 노력했고 첫 경기에서 잘 들어맞았던 노룩패스로 휘문고 수비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했다.
이 부분이 1쿼터, 2쿼터 포함 전반까지는 잘 맞아떨어졌다. 심지어 경기 종료 직전까지 휘문고는 부산중앙고의 약속된 패턴 플레이에 어려움을 겪으며 크게 고전했다.
박훈근 코치도 코트 위 선수처럼 어떨 땐 그 누구보다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며, 영화에 나온 강양현 코치처럼 심판에 대해 전투적으로 항의를 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정명근의 말대로 부산중앙고는 1대1 기량보다는 패스나 약속된 움직임으로 많은 공격을 가져가고 있었다. ‘이 순간에는 여기에 위치해 있어야지’라는 부분이 철저하게 코트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중앙고 로스터에 등록된 인원은 총 8명. 1분도 소화하지 않은 25번 김이삭을 제외하면 총 7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휘문고의 끈질긴 추격전과 접전으로 5반칙 퇴장을 당한 선수가 무려 2명이었다. 7빼기 2는 5, 모두가 계속해 코트 위에 남아있어야 했다.
2차 연장 포함, 50분 풀타임, 48분, 47분 등 대부분의 시간을 소화한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특히나 2차 연장을 원했던 이제원의 미드-레인지 점퍼가 림을 통과했을 때 부산중앙고 선수들은 하나같이 코트에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천장을 바라보고 大자로 누워버리고 말았다.
공격자를 향해 완벽한 컨테스트까지 이뤄졌지만 그것을 이겨낸 이제원의 높은 타점의 점퍼가 더욱 빛을 발한 것뿐이었다. 뛰어난 수비에 더 완벽했던 휘문고의 공격.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낸 부산중앙고는 결국 승부처, 결정적인 자유투 미스와 연속 턴오버 발생으로 휘문고에 1승을 헌납했다.
휘문고의 영웅으로 등극했던 이제원은 부산중앙고를 바라보고 “플레이가 너무 좋았다”며 칭찬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휘문고와 보유 전력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뽐냈던 부산중앙고. 덕분에 경기장을 찾은 타 학교 선수단, 학부모, 관계자 모두 명승부에 흡족함을 표하지 않았나 싶다.
중고농구 관계자 역시 “이래서 아마추어 농구를 보는 거에요”라며 말을 걸어왔고 생각지도 못한 라이브 시청자 수에 놀라움을 표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날 우슬체육관에서 마주했던 모든 경기는 전부 프로 경기 못지않게 접전, 또 접전의 연속이었으며 아마추어만의 고유한 재미와 신선함을 관중에게 선물해 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 리바운드의 주인공이었던 부산중앙고는 비록 휘문고에 연장 접전 끝 패배를 당하며 1승 1패를 기록하게 됐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영화 마지막 결말처럼 4관왕에 도전하는 ‘고교 최종 보스’ 용산고다.
다시 이변을 연출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같은 결말로 부산중앙고의 행진이 멈춰 설까. 그 결과는 다가오는 15일 17시 30분에 알 수 있다.
#사진_ 점프볼 DB, 한국중고농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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