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기지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무기-기술 주고받을 듯
러는 우크라전 포탄 등 부족 절실
식량·노동자 송출 거론 가능성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두 정상은 공동선언이나 합의문 등 어떤 문서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고,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이번 정상회담에서 군사협력 논의가 상당 부분 진전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의 무기·기술 거래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회담에 앞서 러시아 매체가 푸틴 대통령에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인가’라고 묻자 푸틴 대통령은 “그래서 우리가 이곳(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온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 대표단은 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5월과 8월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지만 실패했다. 지난 5월 발사 때엔 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발사체의 2단 추진체 이상으로 실패했고, 지난 8월 발사에선 비상폭발 체계에 오류가 생겼다. 북한은 우주강국 러시아의 위성 발사 경험과 기술을 넘겨받기를 기대한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현재 북한 위성은 발사체 내 고공 엔진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러시아가 적절한 지상 장비를 지원해주거나, 직접 엔진을 러시아로 가져와 시험을 해보는 등 여러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오는 10월 다시 정찰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한국과 미국 등은 러시아 등이 북한에 위성 기술을 제공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위반이라고 견제하고 있지만, 인공위성 특성상 평화적 사용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평화적·군사적 용도로 사용 가능한 위성 같은 이중 기술은 (국제사회에서) 강한 비난을 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앞으로 이 부분부터 협의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러시아는 위성 기술을 주는 대가로 북한에서 포탄과 탄약 등 재래식 무기를 받기를 원한다. 1년 반이 넘어가는 우크라이나전에서 사용할 포탄 재고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무기 거래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이와 관련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회담 전 ‘두 정상이 무기 거래를 논의할지’ 여부에 대해 “물론 이웃 국가로서 공개되거나 발표돼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위원장이 회담 뒤 푸틴 대통령과 만찬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데 러시아와 함께하겠다”고 말한 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영웅적인 러시아군과 인민이 승리의 전통을 빛나게 계승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과 강국 건설이란 2개 전선에서 무한히 값진 명예의 성과를 확실히 보여줄 것으로 깊이 확신한다”고도 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 한반도·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자신의 러시아 방문이 “북러 관계를 깨지지 않는 전략적 협력 관계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을 주고받는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북한과 러시아를 향해 포탄과 위성 기술 거래를 할 경우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런 압박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날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텔레비전에 “북한에 대한 제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지정학적 상황에서 채택됐다”며 서방 국가가 대북 제재 부과 때 제시한 대북인도적 지원 약속은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과 러시아 모두 제재를 받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러 관계가 악화된데다 북-미 관계, 남북 관계도 모두 안 좋은 가운데 유엔 제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북-러 관계가 크게 격상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러시아가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북한에 이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나 러시아 등 군사강국은 핵추진잠수함처럼 안보에 관련된 핵심 첨단기술을 우방이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최용환 책임연구위원은 “핵기술과 같은 고도의 첨단기술 이전은 핵확산 방지를 핵심 국익으로 설정한 러시아에도 부담이 된다”며 “이후 북·러 협력의 정도는 한·미의 대응을 보면서 진전시키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북한과 러시아의 연합 훈련 또한 의제로 올랐을 가능성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머리발언에서 “우리는 분명히 경제협력 문제, 인도주의 성격의 문제, 지역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운 북한에도 경제 분야 협력이 중요하다. 그에 따라 양국 정상회담에선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과 에너지를 포함해 교통과 농업 분야 협력도 논의됐다.
타스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회담 뒤 러시아1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운송과 물류, 철도, 도로 등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며 “농업 발전과 관련해서도 러시아가 지원할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하산과 북한 함경북도 나진 철도 연결 사업을 통한 수송 확대도 거론된다.이 사업은 2001년 북-러 정상간 합의로 시작됐지만, 북한 핵실험과 제재 등으로 2013년부터 중단된 상태였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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