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30년 걸친 미국과 관계 정상화 노력 포기”

정원식·최서은 기자 2023. 9. 1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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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왜 친러노선 택했나
“김일성·정일 정책 실패 판단
근본적인 정책 변화 모색”
미 전문가들, 밀착 요인 분석
“러와 실질 동맹 관계로 진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4년 만의 정상회담은 북한 체제가 지난 30년간 추진해온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포기하고, 표면적으로만 가까웠을 뿐 실질적으로는 거래가 많지 않았던 러시아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L 칼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는 12일(현지시간)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에 대한 김 위원장의 행보는 전술적인 것도, 절박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그것은 북한 정책의 근본적 변화의 결과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30년간의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북한이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얼마나 끈질기게 관계 정상화를 추구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현재 정책 변화의 깊은 뜻과 향후 (변화의) 전조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냉전이 끝날 무렵 (북한) 통치 왕조 창시자 김일성은 붕괴하는 소련과 고압적인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정책을 공식화했고, 그의 아들 김정일은 대미관계 정상화와 핵개발 병진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김일성의 정책을 따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 위원장도 이 같은 선대의 정책을 이어받아 핵·미사일 프로그램 고도화와 대미 협상을 함께 추진했으나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북한은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그해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근본적인 정책 변화의 징후를 보이다 2022년 3월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주장한 미사일을 처음으로 발사함으로써 2018년 북·미 정상 간 비핵화 합의가 깨졌다. 칼린 연구원과 헤커 교수는 “이후 북한은 이웃 강대국들에 대한 완충 장치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했던 기존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판단이 반영된 일련의 발언과 행동을 이어나갔다”면서 “장기적인 지정학적 흐름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 재조정이 가장 현실적이고 아마도 안전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북·러관계에 ‘새로운 시대’가 예고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은 예전에는 국제사회에 외교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면, 이번엔 실질적인 무기 거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은 1953년 이후 전쟁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탄약이 남는 상태”라면서 북한은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가 위성과 핵잠수함 첨단기술 및 식량을 제공해주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이어 “상호 이익이 되는 합의가 이뤄지면,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무역으로 제한됐던 양국 관계가 보다 실질적인 것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기로 결정한 것은 김일성이 1948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을 건국한 이래 양국 관계 역학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표도르 테르티츠키 국민대 연구교수는 “협상이 성사된다면 1990년에 시작된 북·러관계의 한 시대가 진짜로 끝나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북한에서 군수품을 받는 대가로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는 거래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식·최서은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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