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자유시’ 스보보드니

배성규 논설위원 2023. 9. 1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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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1912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하면서 아무르주 내륙에 ‘알렉세옙스크’라는 도시를 세웠다. 황태자 알렉세이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후 이곳을 점령한 볼셰비키는 도시 이름을 ‘스보보드니’로 바꿨다. 러시아어로 ‘자유로운’이라는 뜻이다. 우리 독립군은 이곳을 ‘자유시’라고 불렀다.

▶하지만 스보보드니의 역사는 자유와 거리가 멀었다. 1921년 이곳에서 독립군이 소련 붉은 군대에 집단 학살되는 참변이 벌어졌다. 청산리·봉오동 전투 승리 후 일제의 강한 압박에 밀리던 독립군은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자유시에 총집결했다. 하지만 소련은 독립군에게 무장 해제를 요구했다. 이를 거부하자 소련은 독립군 내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함께 장갑차와 기관총을 앞세워 기습 공격했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최대 500명에 달했고 포로로 잡혀 붉은 군대에 끌려간 이도 1000명에 가까웠다.

▶스보보드니 외곽에는 2017년 시 당국과 고려공산당 후손들이 세운 추모비가 있다. ‘1921년 이 땅에서 희생된 한인들이 잠들다.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없기를.’ 독립군 내부 갈등이 있었지만 우리끼리 싸운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의 연해주 철군을 바랐던 소련이 일본과 밀약해 독립군을 유인해 학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스탈린 통치 시절 스보보드니 인근엔 정치범 강제수용소인 굴라크가 들어섰다. 독립군 출신과 고려인들도 끌려갔다고 한다. 이곳에선 비인간적인 처우와 가혹 행위가 난무했다. 1935년엔 수용자가 19만3000명에 달해 소련 최대 규모였다. 냉전 시대엔 스보보드니에 ‘보스토치니’라는 전략로켓군 기지가 들어섰고 핵미사일이 배치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5100m짜리 활주로도 건설됐다. 이곳은 다시 2015년 러시아의 차세대 우주기지로 개발됐다. 우리 나로우주센터 면적의 110배다. 푸틴은 보스토치니 기지 건설에 한국 투자를 요청하기도 했다. 여기서 위성을 실은 소유스 로켓을 처음 쏘아 올리고 지난달엔 무인 달 탐사선도 발사했다.

▶북한 김정은이 13일 보스토치니 기지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반제 자주 전선에서 언제나 러시아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소련이 고려공산당과 손잡고 우리 독립군을 말살했던 바로 그곳에서 이번에는 조선노동당이 러시아와 협력을 선언한 것이다. 김정은은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 기술을 얻어내 우리를 위협하려 한다. 100년 전 스보보드니의 악몽이 재연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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