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대응’ 정부의 공백 메우는 모로코 국민들의 연대

김서영 기자 2023. 9. 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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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정보 공유…낙석 위험에도 구호품 차에 싣고 몰려가
뒤늦게 부상자 찾은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이 12일(현지시간) 강진 피해를 본 마라케시의 모하메드 6세 대학병원을 찾아 부상자를 위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가 빨리 일하지 않는다면 많은 이가 죽을 것이다.”

모로코 타로우단트 청소년센터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한 21세 청년은 이같이 말했다. 강진이 덮친 모로코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팔 걷고 나서 정부의 공백을 채우고 있다고 지난 11일(현지시간) CNN·가디언 등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마라케시와 항구 도시 아가디르를 잇는 10번 국도는 지난 10일 일부 개방된 직후부터 구호 차량 행렬이 몰려들고 있다. 탈랏냐쿠브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마라케시, 카사블랑카, 라바트, 탕헤르 등 모로코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차량에는 매트리스와 옷, 생수 등이 쌓여 있었다.

탈랏냐쿠브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마을로, 도로가 좁고 낙석 위험이 있어 아직 진입이 여의치 않다. 마을 주민 약 3000명 중 수백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차량 3대에 나눠 탄 청년 16명은 “온종일 운전해서 이곳에 왔다. 의복과 음식, 돈을 모아왔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느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처럼 구호물자가 사람 손길을 타고 아틀라스산맥 곳곳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모로코인들은 도움을 요하는 마을과 필요한 물품의 목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정보를 나누고 있다. 메디 아야시(22)는 구조 활동을 돕기 위해 마라케시에서 일하던 호텔을 그만두고 친구들과 타로우단트로 왔다. 그는 “지진과 그 이후 벌어진 비극을 보며 인생에서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산골로 식량을 날랐던 한 프랑스 사업자는 “비참함을 예상하고 갔으나 모로코의 연대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풀뿌리 활동이 공식적인 정부 지원보다도 빠르게 이재민에게 도착하면서, 정부의 공백은 더 두드러지고 있다. 고립된 산골 오지 계곡 인근 도로에서 노숙 중인 한 주민(24)은 “지나가는 이들이 음식과 담요를 줬지만, 정부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지진이 난 후 부모를 찾아 탈랏냐쿠브로 달려온 한 남성은 “(정작) 주민들을 도와야 했던 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것은 완전히 배신”이라며 “정부가 우리를 거부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심장에 칼이 꽂힌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진 발생 이후 5일 차에 접어들면서 모로코 당국의 방점이 ‘생존자 구조’에서 ‘이재민 구호’로 넘어갔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에 출동 신호만을 기다리던 전 세계 구조대원들은 절망감을 표하고 있다고 AP·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모로코 정부는 아직도 영국, 스페인 등 4개국의 지원만 수용한 상태다. 지난 2월 약 70개국의 지원을 즉각 받아들였던 튀르키예와는 대조적이다. 프랑스 국경없는구조대 단장인 아르노 프레이스는 “나흘이 지난 지금 떠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우리는 시신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잔해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 긴급하게 일하기 때문”이라며 “구조를 위해 훈련한 우리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비참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구조대가 모여들면 혼선이 빚어진다’는 모로코 정부의 입장도 일부 일리는 있으나, 살려야 할 사람이 있을 때는 한시가 급하다고 강조했다.

모로코 정부는 12일 현재 사망자 수는 2901명, 부상자 수는 5530명이라고 발표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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