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대홍수, 기후위기·내전·댐 관리 소홀 ‘예견된 인재’
6000명 넘게 숨진 데르나
계곡 ‘와디’가 깔때기 역할
댐 2개 무너지며 도심 침수
“원자폭탄처럼 물 방출됐다”
기후위기 속 이례적 폭우
10여년 정치적 혼란에
재난 대비 투자에 손 놓아
리비아 대홍수로 인한 인명 피해가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연 재해로 비롯된 재난이지만 최악의 참사로까지 번지게 된 것은 기후변화, 정치적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예견된 인재’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알자지라 방송 등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인한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의 사망자가 13일 오전(현지시간) 현재 6000명으로 늘었다고 현지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실종자도 1만명이 넘어 앞으로 희생자 수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민도 4만명이 넘게 발생했고, 홍수 피해를 돕던 자원봉사자 3명도 숨졌다고 BBC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리비아의 취약한 지형, 환경 파괴, 기후위기, 정치적 분열, 부패, 경제적 불안정, 낡은 인프라 등 여러 복합적 문제들이 합쳐져 이 같은 재앙을 낳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지중해 연안 저지대에 위치해 홍수에 취약한 데르나의 지리적 요인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데르나는 ‘와디’라고 불리는 건조한 자연 계곡 끝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난 10일 토네이도를 동반한 폭풍 ‘대니얼’이 뿌린 비에 와디가 깔때기 역할을 하면서 순식간에 물이 도시 중심부로 밀고 들어왔다. 이에 데르나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댐 2개가 무너지며 데르나 지역이 완전히 침수됐다. 한 주민은 가디언에 “물이 모이는 일부 계곡의 깊이는 약 400m에 이른다”며 “댐이 무너지자 물이 원자폭탄처럼 방출됐고, 다리 8개와 주거용 건물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기후위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리비아 국립기상센터는 지난 10일부터 24시간 동안 베이다에서 414.1㎜의 강수량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대부분 비는 6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베이다의 9월 평균 강수량은 15.24㎜, 연평균 강수량은 543.56㎜라는 점에서 이번 폭우는 이례적이다. AP통신은 “대니얼은 지중해의 비정상적인 따뜻한 물에서 에너지를 끌어내 더욱 강해졌고, 그리스와 튀르키예, 불가리아를 거치면서 대형 폭풍으로 변신했다”고 설명했다. 아테네아카데미의 기후 전문가 크리스토스 제레포스 사무총장은 “이는 전례 없는 사건”이라며 “19세기 중반에 기록이 시작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비가 이 지역을 강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같은 지중해 연안에서도 대비 수단이 가장 적은 국가에 가장 파괴적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리비아는 현재 기후 전략을 수립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리비아가 그간 기후변화에 전혀 대응을 하지 않은 점이 문제를 심화시켰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으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리비아는 10년 넘게 정치 공백과 혼란을 겪고 있다. 현재 유엔과 서방이 인정한 과도정부 리비아통합정부(GNU)가 서부를, 군벌 리비아국민군(LNA)이 동부를 나눠 통치하고 있다. 피해가 큰 데르나는 오랜 기간 이슬람국가(IS) 지배 아래 있었다. 국제위기그룹의 리비아 선임 분석가 클라우디아 가자니는 뉴욕타임스(NYT)에 “지난 10년 동안 리비아는 전쟁과 정치적 위기를 차례로 겪어왔다”며 “이는 국가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댐 붕괴로 인한 재난 경고는 이미 예견돼 왔다. 지난해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 논문에서 리비아의 한 수문학자는 계절에 따른 와디의 반복적인 범람이 데르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면 그 결과는 도시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댐의 보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리비아의 경제 전문가 모하메드 아흐메드는 “안보 혼란과 댐 안전 조치에 대한 당국의 감시 소홀이 데르나에 재앙을 초래했다”면서 “두 가지 요인은 앞으로 더 많은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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