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포탄 챙기고, 北은 미사일기술 받고 … 한반도 안보지형 격랑

한예경 기자(yeaky@mk.co.kr), 김성훈 기자(kokkiri@mk.co.kr), 박인혜 기자(inhyeplove@mk.co.kr) 2023. 9. 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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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푸틴, 러 우주기지 회동
푸틴 "北인공위성 개발 돕겠다"
값싼 북한 노동자 파견도 조율
러, 스스로 채택한 제재 위반
유엔 안보리체제 심각한 훼손
대통령실, 공식입장 안 내놔
"침묵에 더 무거운 의미 있어"
캠프데이비드 3국공조 시험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둘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앞줄 왼쪽 둘째) 일행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현지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가 전격 정상회담을 열고 군사적 밀착 공조에 나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이 격랑에 휩싸였다. 지난달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채택된 한·미·일 3국 정상 간 협의가 첫 시험대에 올랐고, 북·러 군사협력 확대로 북·중·러 간 힘의 균형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크렘린궁이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밝힌 바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이날 오후 1시쯤 만났다. 이들은 함께 걸으며 기지 내 시설을 둘러보고, 김 위원장이 멈춰 서서 현지 안내자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어지는 정상회담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내 '앙가라' 로켓이 조립 중인 발사체 설치·시험동에서 이뤄졌으며 양국 간 군사 협력과 경제 협력, 인적 교류 등 다양한 현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 이어진 만찬에서 "우리는 패권을 주장하고 팽창주의자의 환상을 키우는 악의 결집을 벌하고 안정적인 발전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신성한 투쟁을 벌이는 러시아군과 국민이 분명히 위대한 승리를 거둘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편들었다.

정상회담을 끝낸 양 정상은 전투기 생산시설을 방문해 군사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날 일본 교도통신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회담 이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약 620㎞ 떨어진 하바롭스크주의 군수산업 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있는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곳은 러시아 공군 주력 전투기종인 수호이(Su) 전투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 회담으로 북·러 간 무기 거래가 공식화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욱 장기화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이 러시아에 필요한 각종 포탄·미사일을 공급하는 '불법 무기고' 역할을 맡게 되면서 러시아의 전쟁 지속 능력이 향상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 정치·경제적 부담과 공급망 난맥상은 상당 기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대규모 노동력을 공급받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을 개연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징집으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북한에서 값싸게 파견받는 데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미·일 3국이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3자 협의 공약'에 대한 북·러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된다. 외교부는 이날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 나마즈 히로유키 일본 북핵수석대표와 3자 유선 협의를 하고 북·러정상회담 직전 미사일 도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캠프데이비드에서 이뤄진 3국 간 대북 공조 강화 합의에 따라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북·러 정상 간 만남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통령실이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는 게 더 의미심장하다. 침묵에 더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침묵은) 우방국들과 충분한 소통을 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봐도 된다"고 덧붙였다.

북·중·러 3각 구도를 주도했던 중국 대신 러시아가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3국 간 미묘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동안 러시아는 북핵 6자회담 등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중국과 보조를 맞추며 발언권을 유지해 왔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은 대북제재의 선을 뛰어넘지는 않으면서도 대북 주도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결의를 무시하고 북한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 전후 세계 질서를 이끌었던 '유엔 체제'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오는 19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전 세계 각국 정상이 모일 예정이지만, 북·러 군사 협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엔 안보리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대북제재를 만든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스스로 제재를 위반하고 북한과 손을 잡으며 제재 시스템 자체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에는 잇따른 북한의 도발에도 대북제재 적용마저 반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감싸고 있다. 안보리는 지난해 5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이후 북한의 유류 도입 허용량을 추가로 줄이는 제재 결의안을 표결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북한이 ICBM을 쏘면 대북 유류 공급 제재 강화를 자동으로 논의한다'는 기존 대북제재 조항의 '방아쇠(트리거) 조항'에 따른 자동적 조치였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유야무야됐다.

[한예경 기자 / 김성훈 기자 /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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