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또 제동… 박주민 “보험사 이익 늘어날 가능성”

이학준 기자 2023. 9. 13.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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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간소화, 14년째 국회 문턱 못 넘어
법사위 “정보보호 가능한지 추가 논의해야”
의료계, 보이콧·위헌소송 불사하며 ‘결사반대’

실손의료보험금 청구를 전산으로 자동 처리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추가 논의를 진행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결론인데,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 법사위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의결하지 않았다. 다만, 법사위는 개정안을 제2 소위원회로 회부하지 않고 계속해서 논의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박 의원은 “의료법·약사법에서 의료 관련 정보를 열람·제공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며 “개정안은 단순히 ‘의료법·약사법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만 있어 법의 취지가 충돌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사들이 전자적으로 가공된 정보를 많이 축적하고, 이를 이용하면 많은 이익을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정보가 제대로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은현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수석전문위원실 등에서 법체계 정합성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개정안과 동일하게 의료법 규정을 배제한 채 운영되고 있는 법률·제도가 이미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실무를 담당했던 신진창 금융위 금융산업국장도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 법적인 문제가 없다”며 “지난 14년 동안 국회에서 장시간 논의가 돼 정무위원회에서도 여야 합의를 통해 의결해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법사위에서 개정안은 박 의원 등의 반대로 결국 통과가 되지 못했다. 이로써 개정안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 권고로 탄생한 지 14년 동안 논의만 거듭하게 됐다. 더구나 의료계가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어 추가 논의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통과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 가입자들이 요양기관(병·의원)에 요청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병·의원이 진단서 등 관련 서류를 전산화된 형태로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을 거쳐 보험회사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보험 가입자 입장에선 단순 요청만 해도 서류 접수가 자동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층 편리해진다.

현재는 환자가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병·의원에서 서류를 발급받은 뒤 이를 직접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보험연구원이 2018년 성인 남녀 2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손보험금 청구 방법은 ‘설계사를 통한 접수’가 52.2%로 가장 많았다. 이메일·스마트폰은 22.4%, 팩스는 22.1%, 직접 방문은 13.6%였다. 보험연구원은 “실손보험금 청구체계는 피보험자를 번거롭게 하고 피보험자의 시간을 소모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가 번거롭다 보니 받아야 하는 보험금이 소액이면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이른바 ‘휴면 실손보험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1년과 지난해에 청구되지 않은 실손보험금은 각각 2559억원과 2512억원에 달했다.

이정근 대한의사협회(의협) 상근부회장이 지난 12일 국회 앞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펼치고 있다./대한의사협회

의료계는 환자들의 의료정보가 중계기관에 모인다는 점을 문제 삼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반대하고 있다. 보험사가 대규모 의료정보를 입수할 수 있어 이를 활용해 향후 특정 집단의 보험 가입을 거절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보험사는 가입자 편익 증대라고 하겠지만, 결국엔 영리를 위해 행동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들 의료정보는 결국 돈이 되는 정보다. 이 정보를 보험사가 아주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것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 보험업계는 개정안 찬성… “과다 청구 줄어 손해율 개선”

언뜻 보기엔 보험사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반대해야 한다. 개정안이 통과돼 실손보험금 청구가 자동화되면, 보험사는 앞으로 더 많은 보험금을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손보험 손해율이 한때 130%까지 치솟은 상황이라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한 손해율은 이보다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손보험 청구 과정이 전산 자동화로 투명해지면 병원마다 천차만별인 비급여 진료비를 비교하는게 가능해진다. 단기적으로는 지급해야 할 보험료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비급여 과다 청구가 줄어 손해율이 개선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픽=손민균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손해율을 높인 주범 중 하나로 병원의 비급여 진료비 과다 청구를 지목해 왔다. 정확한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병원마다 같은 진료를 해도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병원이 비급여 진료비를 부풀려 실손보험 청구를 하다 보니 손해율이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의료계는 다양한 비급여 부분에 대한 치료를 진행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며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로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게 된다면 비급여 진료의 원가가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의료계의 진료비 폭리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손보험은 사보험 영역이지만, 국민 4000만명이 가입돼 있는 것이라 전 국민의 편익이 증대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사가 의료정보를 활용할 것이란 지적에 대해 “이미 보험사는 10년 넘게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만들어 왔다”며 “간소화를 통해 나온 데이터 때문에 기존 빅데이터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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