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환자를 위한 비대면 진료는 없다

기자 2023. 9.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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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시작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놓고 14일 공청회를 연다고 한다. 지금은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지 않는 초진 환자에 대해서도 이를 허용하고, 재진 환자도 폭넓게 인정하는 쪽으로 시범사업 모형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정부는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시범사업 모형을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초진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문제는 의사협회와 비대면 진료를 중계하는 플랫폼 업체 사이에 치열한 논쟁을 거친 후에 내린 결정이었는데도 말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복지부가 3개월밖에 안 된 시범사업의 모형을 바꾸려고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둘러싸고 의사·약사·병원, 플랫폼 업체 간 어떤 논쟁이 있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는 이용자를 늘리려 다른 선진국에선 일반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권장하지 않는 초진 환자에게까지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의사협회는 동네의원이 환자를 빼앗기는 것을 막으려고 비대면 진료를 재진 환자에 한정하고 큰 병원의 비대면 진료를 제한하는 데 집중했다. 약사들은 약 배달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의사·약사·병원, 플랫폼 업체 모두 겉으로는 환자와 국민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환자와 국민은 뒷전이었다.

환자를 위한 비대면 진료를 하려고 했다면 첫째, 지방과 시골에 사는 암 환자 같은 중증환자가 검사결과만 확인하려고 몇 시간씩 들여 서울이나 부산, 대구 같은 대도시까지 갈 필요가 없게 해줘야 했다. 수도권 대학병원에 다니는 지방 중증환자와 광역시 대학병원에 다니는 지방 소도시와 군 지역 중증환자를 합하면 약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큰 병원에 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사협회의 반대로 희귀질환자와 수술 후 관리가 필요한 환자만 큰 병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둘째,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주치의가 대면 진료 사이사이에 환자가 집에서 잰 혈압과 혈당 수치를 보면서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게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비대면 진료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주치의제도를 함께 도입하자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의사협회는 주치의제도가 도입되면 과잉진료로 돈을 벌기 어렵게 되니 죽기 살기로 반대하고, 플랫폼 업체는 환자 건강관리에 관심이 없고, 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도입하는 데만 매몰돼 의사협회가 반대하는 주치의제도라는 말을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셋째, 약은 택배로 받을 수 있게 해주고 복약 상담은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했다. 하지만 약사들의 반대로 진료는 비대면으로 하면서 약은 약국에 가서 직접 받아야 하는 ‘반쪽짜리’ 비대면 진료가 됐다. 섬·벽지에 사는 사람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예외적으로 허용해주긴 했지만 여기 해당되는 사람은 소수이다. 전화나 화상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약에 대한 설명을 환자가 직접 약국에 가서 들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넷째, 다른 선진국처럼 병원 방문을 꺼리는 정신과 환자, 대면 진료와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은 피부과 진료, 주변에 병·의원이 없어 긴 시간을 들여 병원에 가야 하는 의료취약지를 정교하게 분석해 초진을 허용해야 했다. 이처럼 의사와 병원, 플랫폼 업체는 비대면 진료가 꼭 필요하지만 환자 수가 적어 수입에 별 영향이 없으니 관심이 없고, 정부는 등 떠밀려서 비대면 진료제도를 도입하는 데만 매몰돼 있었으니 이런 정교한 분석에 기반한 비대면 진료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왜 정책을 결정할 때 환자와 국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이익단체의 ‘밥그릇 싸움’만 난무하게 될까? 정부와 국회를 포함한 정책결정자들이 이익집단의 ‘포로’가 돼 있기 때문이다. 은밀한 로비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겠지만, 이익집단이 정책결정자를 포로로 만드는 방법은 훨씬 광범위하다. 비대면 환자 중 초진환자 비중이 18.5%에 불과한데도 99%라고 우기는 플랫폼 업체의 주장을 언론은 검증 없이 받아쓰고, 그런 기사를 사실이라고 믿는 국민이 대부분이 되면 정부는 업체에 유리한 결정을 하기 쉽게 된다.

허술한 법 때문에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진 공무원을 병원과 로펌, 기업으로 옮겨간 은퇴 공무원이 설득한다. 그런데도 정책 결정 과정은 불투명해서 누가 왜 어떤 근거로 정책을 결정했는지 알 수 없고, 공무원을 견제할 수 있는 전문가와 환자·시민단체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이처럼 의사와 병원, 기업에 유리한 정책들이 쌓이면서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점점 더 기형적으로 변하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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