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가짜뉴스’ 몰아내기 < 언론 탄압

차준철 기자 2023. 9.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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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언론이 24시간 정부 욕만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

“가짜뉴스 미디어(망해가는 뉴욕타임스·NBC·ABC·CBS·CNN)는 나의 적이 아니라 국민의 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2월 트위터에 올린 말이다. 그 열흘 전에는 자신의 지지율이 50% 미만이라고 밝힌 여론조사 보도들에 대해 “모두 가짜뉴스이고, 선거 당시 CNN·ABC·NBC 조사도 그랬다”고 썼다. 비판적인 언론들을 맹비난하고 적대시한 것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이런 호전적·폭력적 행태는 선거 시기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 재임 기간 4년 내내 계속됐다. 자신과 맞서는 언론에 싸움을 걸었고 틈날 때마다 언론을 악당으로 만들었다. ‘러시아 스캔들’을 거론한 CNN 기자를 “무례하다”고 비난하며 백악관 출입증을 빼앗고, 기자들이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기자회견장을 나가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나는 지금 미디어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언론인은 세상에서 가장 부정직하다”는 연설도 수시로 했다. 그러곤 편 갈라서 폭스뉴스 같은 친트럼프 매체와 밀착했다.

트럼프가 언론을 적대시한 이유는 뭘까. 2016년 대선 후보 시절에 이미 말했다. “언론 모두를 불신하게, 언론 모두를 저질이라 여기게 만들어서 언론이 나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를 쓰더라도 믿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것이 트럼프 언론관의 핵심이다.

트럼프는 언론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든 철석같이 믿는 지지자들이 있고, 언론은 그 말을 어김없이 뉴스로 다뤄주기에 누가 봐도 사실이 아니고 금세 탄로날 거짓 주장을 펼쳤다. 반박이 나오면 무시하고 해당 언론을 공격하는 쪽을 택했다. 발언 진위는 개의치 않는다. 논란으로 키우면 그만이었다. 언론을 정쟁 대상으로 끌어들여 언론의 비판을 깔아뭉개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유리한 발언을 마음껏 던지고 퍼뜨릴 수 있어 트럼프는 언론 적대를 정치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트럼프가 입에 달고 다니며 언론 병폐로 각인한 가짜뉴스란 과연 무엇일까. ①정치·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②고의로 왜곡·날조하고 ③언론 보도로 가장하는 거짓 정보, 요약하면 ‘조작된 헛소리’라는 좁은 의미의 학계 정의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의 가짜뉴스는 내 마음에 안 드는 생각이나 사실까지 포괄한다. 언론을 공격하는 주요 무기이자 언론 장악을 획책하는 핵심 수단이다. 가짜뉴스의 해악을 논하기에 앞서 가짜뉴스 용어 자체의 의미부터 엄밀히 구분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진영 논리에 따라 ‘가짜뉴스 프레임’을 악용하는 문제도 허위·조작 정보의 폐해와 별개로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 확산을 막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가 위협받고 우리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삶 또한 위협받게 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의 ‘김만배 인터뷰’ 건이 불거진 이후 가짜뉴스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천명한 것이다. 보도 과정의 위법 사항 여부는 관계당국이 명확히 살펴볼 일이다. 그러나 정부 움직임을 보면 가짜뉴스를 앞세워 비판 언론을 적대시하려는 의도가 뚜렷이 나타나 우려된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운운하며 압박했고 가짜뉴스 근절 TF를 가동했다. 방송통신심의위는 뉴스타파를 인용한 방송사 보도를 ‘긴급심의’에 올렸고, 국민의힘은 인용 보도한 기자들과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까지 고발 리스트에 올렸다. 마음에 안 드는 언론만 선별 고발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처사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언론도 전부 야당 지지세력들이 잡고 있어서 24시간 정부 욕만 한다”고 말했다. 언론을 국정 홍보 도구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비판 언론에 적개심을 표출하니, 이동관 위원장이 ‘공산주의 언론’을 들먹이고 “공영방송이 정치적 편향성과 가짜뉴스를 확산해 국론을 분열시켜왔다”며 이사·사장 교체에 속전속결로 나서고 있다.

대미안 탐비니 런던정경대 교수는 “새로운 포퓰리스트들이 합법적인 반대파를 약화시키고 책임 있는 언론에 대항하기 위해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써서 이득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가짜뉴스가 문제인 건 맞지만, 정부가 과도한 분노를 앞세우는 것은 공론장을 해친다. 비판 언론을 적으로 두는 것이 언론 공신력을 잃게 만들어 정부가 원하는 뉴스만 나오게 하려는 의도라면, 그 뉴스야말로 가짜이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가짜뉴스 몰아내기가 아니라 명백한 언론 탄압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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