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합리적인 ‘연금정치’를 기대하며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박사는 경향신문 9월7일자 ‘정동칼럼’에서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위원회) 공청회 보고서에 대해 ‘반쪽짜리 보고서’라고 문제제기한 측이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에 갇힌 협소한 ‘연금정치’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 글은 저간의 사정부터 오류가 많다. 이번 위원회는 위원 구성부터 재정안정론 측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럼에도 위원회에 참여한 필자 등 보장성강화론 측이 국민연금의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아무런 이유 없이 삭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위원 사퇴까지 했겠는가?
이번 위원회 보고서는 통상과 달리 양쪽 입장의 시나리오를 보고서의 서로 다른 지면에서 보여주고, 최종 선택은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 재정안정론 시나리오는 보고서 3장에, 소득대체율 인상론 시나리오(인상안)는 4장 1절에 서술키로 했다. 이것도 처음에는 인상안을 4장 2절 가항에 서술키로 됐는데, 인상론 측의 요구로 4장 1절로 옮겨 한 절을 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재정안정론 측의 무리한 요구가 시작됐다. 인상안을 보여주는 4장 1절 맨 앞에 대체율을 올리면 안 된다는 대체율 유지안(유지안)이 서술되어야 하고 나아가 유지안은 다수안, 인상안은 소수안이라는 문구까지 명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인상안의 분량도 3장의 재정안정론의 분량이 아니라 4장 1절 맨 앞에 쓰겠다는 1쪽짜리 유지안에 맞추라는 요구도 했다. 이는 보고서의 원래 취지에 어긋남을 넘어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선이다.
논란 와중에 ‘다수/소수’ 표기 대신 위원 실명표기안이 나왔으나 유지안을 3장에 쓰자는 제안을 무시하고, 4장 1절 맨 앞에 그대로 두겠다고 해 그 안이 무산됐다. 이런 요구를 가장 앞장서서 한 오 박사는 위원회 회의에서 인상안을 연금연구원이 쓰면 된다고 했고, 칼럼에서도 그 주장을 반복했는데 이는 위원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그렇게 할 것이면 재정안정론도 재정계산의 전문기구인 연금연구원이 쓰면 되지 위원회가 써야 할 이유가 있는가?
오 박사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자는 주장을 소득대체율에 갇힌 협소한 연금정치라고 하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은 짧은 가입기간 탓이니 가입기간을 늘려 실질대체율을 올리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큰 모순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식 발표한 소득대체율이 OECD 평균은 42.2%이지만 국민연금은 31.2%에 불과한데 31.2%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38년으로 가정했을 때 이야기다. OECD는 회원국의 소득대체율 계산 때 22세 첫 가입자가 각국이 법률로 정한 최대 가입기간을 가입했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59세까지 가입하므로 22세 첫 가입 때 최대 38년 가입이 가능하다. 즉 OECD가 계산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31.2%는 최대 가입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이것이 OECD 평균보다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 박사가 말하는 크레딧과 보험료 지원 강화는 아무리 해도 최대 가입기간을 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른바 실질대체율은 이미 최대 가입기간을 가정해 계산된 31.2%를 넘지 못한다. 게다가 그런 실질대체율이라도 그것을 위한 크레딧과 보험료 지원 강화를 오 박사가 위원회 내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한 장면이 필자의 기억에는 없다. 가입연령 상향은 최대 가입기간을 늘리는 것이지만 이것이 위원회에서 실효성이 없는 조치로 권고되어도 그에 대해 오 박사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한 장면은 기억에 없다. 오 박사는 법정대체율을 낮추려는 목적으로만 실질대체율을 말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오 박사는 ‘연금 3총사’ 운운하지만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받아가는 비중은 계좌 기준 3%가량에 불과해 노후보장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기초연금이 중요하지만 위원회가 이에 대해서도 뚜렷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낮추려는 방안에만 갇혀 실질대체율은 법정대체율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린 채 실질대체율을 주장하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요구를 주도했으면서 새로운 연금정치를 거론하는 것은 어떤 연금정치인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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