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난장판이 따로 없네

2023. 9. 1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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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도중 한 남성이 소화기를 뿌려 순식간에 난장판을 만듭니다." - 영화 '범죄도시' (2017)

난장판.

이 난장판이 조선시대 선비들이 신성한 국가고시를 치렀던 과거장의 마당, 난장(亂場)에서 유래한 말이란 걸 아십니까.

당시 과거시험은 경쟁률이 대단했습니다. 정조 때 치른 과거를 보면 2명 뽑는 자리에 응시자가 10만 명 이상, 제출된 답안지만도 3만 장을 넘었거든요.

시험 결과는 당일 채점해 발표했는데, 과연 반나절 만에 3만 장을 채점하는 게 가능했을까요.

결국 먼저 제출된 300장만 채점하고 나머지는 다 버리는 편법이 등장했고, 그 결과 시험관을 매수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이 치열해졌죠. 그곳은 딱 난장판과 같았습니다.

"자격 검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앞장서 지켜야 할 공단에서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어수봉 당시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5월 23일)

지난 4월, 국가기술 정기기사와 산업기사 시험에서 답안지 6백여 장이 채점 전에 파쇄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죠.

더 심각한 건 이걸 공단이 한 달 가까이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직원 한 명이 착각했다고 '배달 사고'가 나고, 공단은 이런 오류조차 못 잡아내고.

심지어 조사 결과 이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일이 2020년 이후에만 최소 7번이 더 있었습니다.

이번 조사에선, 기사 실기시험 응시자의 답안지 6장 중 1장을 아예 분실한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겁니다. 심지어 공단은 당사자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고 그냥 '추정' 채점을 해 탈락 처리해 버렸답니다.

또 지난해 산업안전기사 시험에서는 엉터리 채점 탓에 400명이 불합격됐다가 합격 처리 됐고, 소방기술사 필기시험에서는 2교시 시험지가 1교시에 배부돼 문제 유출 시비도 벌어졌습니다.

연평균 450만 명에 달하는 수험생의 입장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격증 시험에 많은 기대와 희망을 걸었을 텐데, 이렇게 뒤죽박죽, 혼란스럽게 처리해 버리다니요.

난장판의 또 다른 이름은 아수라장이라죠. 국가 기관이 주관하는 시험이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우리 시험장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이거였네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난장판이 따로 없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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