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푸틴에 건넨 북한의 '선물'… 새로운 북러 협력 시대의 개막?
"북의 포탄-러의 식량·군사 기술… 서로 이익 기대"
멀어지는 우크라 평화… 반서방 동맹 강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렁에 빠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의 무기고에 쌓여 있는 군수품이 절실하다. 오랜 서방 제재로 고립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경제 원조뿐 아니라 핵잠수함·인공위성 등 군사 목적 첨단 기술 지원에 목말라 있다.
13일 북러 정상회담은 이처럼 절박한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자리다. 구체적 회담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기브 앤드 테이크'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면 국제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불량 국가'로 평가받는 북러 양국의 새로운 협력 시대 개막을 두고 국제사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 포탄, 우크라 전장에서 유용할 것"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19년 두 정상의 첫 만남이 말잔치에 그친 '외교적 쇼'였다면, 이번 회담은 북러가 보다 실질적 관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북한과 러시아가 '상호 거래'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선에 선 것이라는 얘기다.
우선 북한엔 푸틴 대통령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재래식 무기'가 있다. 크렘린궁 사정에 밝은 러시아 정치분석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러시아는 무엇보다도 탄약이 필요하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첨단 무기보다 대량의 저렴한 무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이어 "아무도 이렇게 엄청난 양의 포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며 "김 위원장이 러시아에 도착했다는 건 이미 (무기 거래에) 합의했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예상 밖의 고전 중인 러시아는 지난해(170만 발)보다 80만 발 더 많은 250만 발의 포탄 생산을 올해 목표치로 잡았다. 하지만 수요엔 한참 못 미친다. 잭 와틀링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지상전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군은 올해 포탄 700만 발을 발사할 예정"이라며 "러시아는 이란과 같은 저렴하고 호환 가능한 탄약의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하는 데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 이후 쓸 데가 없어 비축해 둔 북한의 군수품이 적격이다. 미국 국방정보국(DNI) 출신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러시아군 대부분은 정밀 무기가 아니라 둔기를 사용하는 군대"라며 "북한이 제공하는 1960년대 소련제 낡은 무기는 우크라이나 전장의 러시아군에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러시아가 무기 확보에 나선 만큼,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 가능성은 더 옅어졌다. 푸틴 대통령은 1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에서 "휴전이 이뤄진다 해도, 우크라이나는 전쟁 물자를 보충하고 군대의 전투 능력을 회복할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서방 밀월 "김정은-푸틴, 서로 이익 기대"
영국 BBC방송은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밀착이 '브로맨스'라기보단, 서로 이익을 기대하는 관계라고 짚었다. 특히 방송은 "북한과의 군사 협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보여 준 '국제질서 재편 의지'를 재확인시켜 준 또 다른 신호"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에서도 이탈할 조짐을 보인다. 북한과의 무기나 군사 기술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인 탓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북한에 인공위성, 로켓 기술 등의 전수를 시사했다. 김 위원장도 "북한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데 (러시아와) 함께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푸틴 대통령은 반(反)서방 동맹 강화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지난해 7월 그는 반미의 선봉에 선 이란을 방문,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만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란의 지지를 확보하고, 무인기(드론) 등의 지원을 얻어낸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올해 3월 회동에 이어, 오는 10월쯤 연내 두 번째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푸틴 대통령은 EEF에서 "서방은 중국의 발전을 늦추려 모든 노력을 퍼붓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며 중국을 치켜세웠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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