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건전재정’ 이해하기
[세상읽기]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정부는 내년도 정부 지출 증가율을 2.8%로 하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통계 작성 뒤 가장 낮은 증가율이란다. 대통령은 이 긴축예산이 건전재정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습니다. 그 결과 치솟기만 하던 국가채무가 급격하게 둔화되었습니다.” 정말 사실일까?
보수 언론에서 얼마나 떠들었던지 마치 사실처럼 되어버린 것이 지난 정부의 재정 만능주의와 국가채무 급증이다. 지난 정부 5년간 국가채무 340조원 증가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때문이었다. 코로나 전 3년 동안은 국가채무가 약 100조원 증가했다.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각각 144조원, 180조원 증가했다. 연간 증가율로 보면 보수 정부에서는 약 10%, 문 정부 초기 3년은 약 5%였다. 재정적자 비율도 박근혜 정부(1.7%)보다 문 정부 3년(1.5%)이 낮았다. 조세부담률은 낮은데 지출 수요는 많은 구조 때문이지, 특별히 재정 만능주의에 빠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코로나였다. 경제 마비로 세수는 급감하고, 재난지원금, 자영업자 손실 보상, 고용유지지원금 등 지출 수요는 급증했다. 손실 보상만 100조원을 넘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재정충격을 최소화하며 코로나를 이겼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유명 싱크탱크는 “한국은 어떻게 코로나 동안 양호한 재정 상태를 유지했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2개 선진국 중 재정 악화가 한국보다 덜했던 나라는 덴마크와 이스라엘 두 나라뿐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정말 건전재정에 진심일까? 성장률이 1% 남짓한 침체 상황에서 긴축재정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지만, 건전재정을 자랑하니 사실 확인은 필요하다. 먼저 치솟던 국가채무는 급격히 둔화하고 있는가? 윤 정부 1년차인 작년 국가채무는 100조원 증가했다. 코로나 때와 별 차이 없이 증가했다. 재정적자 비율은 5.1%로 코로나 때인 직전 해보다 더 나빠졌다. 나빠진 결정적 이유는 지방선거를 앞둔 윤 정부의 ‘매표용’ 돈 풀기 때문이었다. 지방선거 직전 윤 정부는 60조원의 사상 최대 추경을 편성해 손실 보상 명목으로 자영업자에게 최대 1천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대선 막판 윤 후보는 대뜸 최대 1천만원 지급을 약속했는데, 정부의 300만원 방역지원금을 ‘매표’ 행위라고 비판한 지 불과 며칠 뒤였다. 그리고 경기회복으로 늘어난 세수를 긁어모아 지방선거 직전에 실제로 지급한 것이다. 그것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장 높은 시기에. 대선 기간 중 여야 후보 모두 정부에 방역지원금 확대를 요구했다. 당시 문 정부는 손실 확인 뒤 보상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니 확대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만약 이 추가 세수를 지출하지 않고 손실 보상 제도대로 했다면 작년 재정적자는 2%대였을 것이다. 누가 재정 만능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해야 할까?
올해 재정 상황은 어떤가? 정부의 연초 전망대로라도 국가채무는 70조원이 더 늘어나는데, 이미 세수 부족이 50조원에 가까우니 120조원 이상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 때와 같은 수준이다. 국가채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각종 공공기금에서 당겨와 쓰고 한국은행에서 빌려와 쓰고 있다고 한다. 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으니 겉으로 채무는 늘지 않겠지만, 빚내는 대신 재산 축내는 것과 마찬가지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통령 표현대로 ‘분식회계’일 뿐이다. 경제가 나빠 세수가 부족하고, 낡은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온갖 감세 조치를 한 결과다. 올해 경기가 안 좋으니 내년 법인세 세수도 작을 것이고, 경기 호전도 기대하기 어려우니 다른 세수도 변변찮을 것이다. 이 와중에 큰 폭의 재정지출을 하면 국가채무는 급증할 것이다. 이제 기금에서 더 빼 올 여력이 없어 분식회계도 어렵다. 신자유주의 감세 정책의 실패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남은 대안은 지출 억제뿐이다. 그 탓에 연구개발 예산만 대폭 줄었다. 감세는 긴축으로, 긴축은 성장동력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확대균형이 아니라 축소균형으로 가는 길이다. 이번 글은 다소 거칠었다.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전사가 되라고 했는데, 나마저 그 거칠어짐에 오염된 것 같아 편치 않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엄마, 내가 채 상병을 못 잡았어”…울면서 잠 깨는 해병대 아들
- 리비아 대홍수 사망 5300명…기후재난 대응할 정부가 없다
- 도로 이명박 정부?…유인촌 지명에 “그렇게 인재 없나”
- “일본, 강제동원 공식 사과했다” 우리 정부가 UN에 낸 ‘의견서’다
- 리비아 대홍수 사망 5300명…기후재난 대응할 정부가 없다
- 김정은 30분 기다린 푸틴 “새 우주기지 보여드리고 싶다”
- 손흥민에 웃는 삼성 “다른 폰 만지면 안된다는 계약은 없지만”
- 푸바오-러바오 헷갈린 ‘생생정보’ 혼쭐낸 판다의 ‘찐팬’들
- 와인 ‘수영장 1개 분량’ 길에 콸콸…남아도는 술 저장고 터져
- “새끼 돌보는 건 여성”…국힘 도의원 “동물과 비교 안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