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이 살아남는 법
[똑똑! 한국사회]
[똑똑! 한국사회] 유지민 | 서울 문정고 1학년
사건의 발단은 서울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을 탔던 것이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너무 넓고 높아 휠체어 바퀴가 걸리면서 넘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곧바로 도와준 덕에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릎 위에 올려뒀던 스마트폰이 선로 아래에 떨어지고 말았다. 안전상의 문제로 열차 운행이 끝나는 자정이 넘어서야 스마트폰을 찾을 수 있다는 역무원 말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당시 지인과의 점심 약속을 가는 중이었는데, 처음 가보는 동네에 휴대폰 없이 식당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되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니 일단 열차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식당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인터넷 지도를 봐야만 했다. 근처에 있던 여자 두분께 말을 걸었는데, 외국에서 여행을 오신 관광객이었다. 서투른 영어로 내 처지를 설명하고 스마트폰을 빌려 식당으로 가는 길을 30초 만에 외워버렸다. 다행히 역 가까이에 있어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지인의 전화번호를 몰라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어떠한 예고나 비상 연락망도 없었던 터라 어떻게든 지인에게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고 말해야 했다. 식당 직원의 스마트폰을 빌려 지인의 계정과 연결된 에스엔에스(SNS)에 접속해 상황을 알렸다. 약속 시간에 맞춰 가게에 들어온 그는 불편해서 괜찮겠냐고,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부탁하라고 말했다. ‘멘탈이 붕괴된’ 상태였는데, 지인의 한마디 덕분에 요동치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한다.
밥을 먹고, 카페에 가고, 쇼핑하는 동안 스마트폰이 없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길을 찾을 때 빼고는 스마트폰이 꼭 필요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나 자신이 스마트폰을 무의식적으로 봐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없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액정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는 대신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유심히 볼 수 있게 됐고, 음악을 듣는 대신 새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떠한 연락도 받을 수 없으니 쉽사리 생각의 흐름이 깨지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이어졌다. 여태까지는 약속에서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내가 스마트폰을 볼 수 없으니 지인도 자연스럽게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니면 스마트폰을 보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사라지니 비로소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에스엔에스를 통한 상호작용은 실제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대신하기 어렵다던 병원 연구조사 결과가 눈앞에서 펼쳐진 셈이다.
이날 이후 ‘지금까지 자의로 스마트폰을 봐오던 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스마트폰을 덜 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고 매번 실패했다. 그럴 때마다 의지가 부족한 나 자신을 채찍질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의지보다 더 깊숙이 있는 무의식에 조종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오싹해지기까지 했다. 실제로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에서 전 구글 직원 제임스 윌리엄스는 “스마트폰 중독의 해결책은 디지털 디톡스가 아니”라고 말한다.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인 환경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 개인의 절제를 해결책이라 하는 것은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와 거리를 두게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무사히 찾은 이후 다시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전과 다르게 스마트폰이 없을 때 생기는 긍정적인 일들을 깨닫게 됐다. 스크린 너머에는 아름다운 풍경, 흥미로운 일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자신에게 ‘스마트폰을 보면 안 돼’ 대신, ‘스마트폰을 보지 않아도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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