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개념 연예인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전모를 공개했다. 2008년 4월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으로 위기에 몰린 정부가 촛불문화제를 주도하거나 정부를 비판한 대중예술인 82명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려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찍은 ‘좌파 연예인’들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사찰 대상이 됐다. 박근혜 정부도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에 동참했거나 선거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인 수천명을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합치면,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인이 8931명에 달하는 걸로 추계됐다.
한 사회의 정치적 성숙도는 그 시대의 문화적 성숙도에 비례한다. 문화가 그 시대를 만드는 공동체 정신이라는 의미일 테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문화의 이런 힘을 억압과 체제 순응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불온하고 반헌법적이다. 권력이라는 강자의 폭력이 문화예술 세계를 처참히 붕괴시키고 공동체 정신까지 무너뜨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도 블랙리스트 포연이 문화예술계를 덮기 시작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우파성향 문화예술단체인 ‘문화자유행동’ 창립식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비판한 그룹 자우림의 김윤아씨를 ‘선동의 전위대’ ‘문화계 이권 카르텔’로 지목하고, “개념 없는 연예인”이라고 공격했다. 시민 80%가 반대하는 오염수 방류 문제를 진영 쟁점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한 시민으로서 의견을 밝힌 대중예술인을 ‘선동’ ‘이권 카르텔’ 운운하는 것이 집권여당 대표가 할 일인가.
문화평론가 서정민갑씨는 김 대표의 공격을 “대중예술인에 대한 천박한 인식, 대중예술을 당리당략적으로 활용하려는 행태”라고 혹평했다. 가뜩이나 새 문체부 장관에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이 있는 유인촌씨가 내정돼 문화예술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김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괴벨스를 꿈꾸는 것인가. 대중예술에 공포와 혐오를 덧씌우고, 표현의 자유를 입맛대로 개념·무개념으로 재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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