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역무원의 뒤늦은 보험금 신청, 이균용 재판부가 인정한 이유는

양은경 기자 2023. 9. 1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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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중 질병 얻었으면 보험기간 지났어도 보험금 줘야”
가족들 “삶을 포기하려다 희망 가져” 편지 보내
지난 8월 31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뉴스1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007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보험약관을 폭넓게 해석해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철도공사 직원에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판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 판결문에 따르면 역무원이던 A씨는 2006년 3월 군산역 부근 철로변에서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후 사지가 마비되고 혼자서는 음식도 삼킬 수 없는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A씨는 2007년 2월 공사가 단체보험으로 가입한 보험사에 질병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보험기간이 2005년 7월부터 1년으로 매년 갱신되는데, A씨가 보험기간 이후인 2007년 3월 식물인간 판정을 받아 약관에서 정한 ‘보험기간 중 장해판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A씨는 뇌출혈로 2007년 6월 퇴사했다.

이 후보자가 재판장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민사 13부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 약관을 폭넓게 해석했다. 재판부는 " ‘보험기간 중 장해판정’문구를 넣은 것은 보험가입 이전 질병으로 치료받던 직원들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며 “재직 중 업무상 질병으로 후유장애를 입은 경우 보험기간 내 장해등급을 받지 못하더라도 보험금 지급 대상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에게 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후보자는 이 판결 이후 A씨 자녀로부터 “가족들 전부가 삶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덕분에 삶의 희망을 얻게 됐다”는 감사편지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승강기 설치 중 사망 근로자, 형사 무죄판결에도 배상 인정

이 후보자의 노동 관련 판결 중에는 201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승강기 설치 도중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사용자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한 소송에서 유족 손을 들어준 사건도 있었다. 승강기 회사 관계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작업지시를 내렸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난 상태였다.

하지만 이 후보자가 재판장을 맡고 있던 서울고법 민사 4부는 “사용자의 선임 및 감독상의 무과실을 쉽게 인정하게 되면 사용자 책임제도에 의한 피해자 구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돼 버린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사용자에게 선임 및 감독상의 과실이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민법은 사용자가 근로자를 선임 및 감독하는 데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용자가 근로자 대신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면책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배상 범위를 넓인 것이다. 이 후보자는 ‘민사와 형사가 적용되는 법리가 다른데도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났다는 이유로 민사 책임을 부인하면 근로자 보호에 구멍이 생긴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996년 단독판사 시절엔 단체협약 위반을 처벌하는 노동조합법 규정에 직권으로 위헌제청신청을 해 위헌결정을 받아낸 사례도 있었다. 연말성과급 지급 문제로 회사와 갈등을 빚던 근로자들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를 거부하다 ‘단체교섭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 외에는 쟁의행위를 금지한다’는 해당 회사의 단체협약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후보자는 ‘단체협약에 위반한’ 이라는 법규정이 추상적어서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며 직권으로 위헌제청을 했고 헌재는 1998년 위헌결정을 했다. 이 결정으로 이미 유죄판결을 받거나 재판중이던 수백 명이 구제되기도 했다.

2007년 대치동의 한 학원이 재직하던 강사들을 상대로 ‘경업금지약정(퇴직 후 경쟁관계 업체에 취업하거나 스스로 설립하지 않도록 하는 약정)’을 위반했다며 위약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강사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 약정의 내용은 퇴직 후에도 학원 동의 없이 5㎞이내 다른 학원에서 강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경업금지약정은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로부터 생계의 길을 빼앗고 그 생존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며 약정이 무효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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