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강진 현장] 노숙 사라지고 활기 되찾은 광장…'불안 속 일상회복' 마라케시
'여진의 공포' 속 심야 노숙 피난처 됐던 광장, 서서히 본모습 찾아가
더딘 구조·구호에 완전한 일상회복까지는 아직 먼 길…"다가올 겨울이 무섭다"
(마라케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니하오! 곤니찌와!…코리언? 안녕하세요"
12일(현지시간) 모로코 정부가 정한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고 처음으로 맞는 저녁에 천년고도 마라케시 메디나의 제마 엘프나 광장을 다시 찾았다.
나흘 전인 지난 8일 6·8의 강진이 강타, 구시가지 등 도시 곳곳의 유적들과 산간 마을을 무너뜨렸다는 것이 언뜻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시의 무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활기가 넘쳤다.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함이 나라 전체를 관통했던 '통곡의 모로코'는 그렇게 일상으로의 회복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여진이 감지되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불안감과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상인들은 해가 지기 전부터 분주한 손놀림으로 노점을 세우고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음식 노점 거리를 둘러싼 주스 노점 점원들은 호객에 열을 올렸다.
기자를 보고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를 묻던 점원에게 25모로코디르함(약 3천300원) 짜리 생과일주스를 사들고 들어선 광장 뒤편 기념품 골목에는 쇼핑하러 온 외국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다.
제마 엘프나 광장의 시장은 예능 프로그램 '장사천재 백사장'에서 백종원이 한식을 판매했던 곳이라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소다.
영국에서 왔다는 한 남성 관광객은 "지진 발생 직전 마라케시에 왔는데 나흘 만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젠 사람들이 여진 걱정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해가 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광장은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음식을 파는 노점에서는 호객하는 점원들과 손님들의 목소리가 넘쳤고 광장 중앙에서는 피에로 모자를 쓴 남성의 길거리 공연에 사람들이 몰렸다. 피에로를 빙 둘러싸고 앉은 사람들은 큰 소리로 웃고 박수를 쳤다.
공연장 옆에서는 숫자판에 동전을 던져 숫자를 맞히는 노름꾼의 영업이 한창이었다.
또 인근에서는 축구공을 들고 나와 공놀이를 하거나 불빛이 나는 장난감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며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망자가 3천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피해가 집중된 아틀라스산맥 고지대에서는 무너진 집터에서 나온 가족의 시신을 부여안고 절규하고 사람들이 여전하지만, 강진의 충격과 공포는 적어도 이제 광장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강진이 발생하기 전과 같을 순 없다. 여전히 강진이 할퀴고 간 흔적과 어두운 그림자는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기념품 골목 중간중간 들어선 식당과 카페, 간혹 눈에 띄는 바(Bar)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현지에서 한식을 파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명 양고기 구이집에는 저녁 7시쯤 들어선 기자가 첫 손님이었다.
이 가게 주인은 "이제 정상화가 되어가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면서 "이전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기자가 자리를 잡은 뒤에 식당에 들어선 외국인 여행객 커플은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루프탑 좌석까지 안내를 받아 왔다가, 불안한 듯 발길을 되돌려 1층 출입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지던 광장과 야시장의 인파는 새벽이 되어서야 끊어졌고, 이후 광장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잠을 청한 사람은 10명 안팎이었다. 광장 중앙에서 잠이 든 사람은 5명이었다.
여진의 공포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한 수백명 시민들의 심야 집단 노숙 피난처가 됐던 며칠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나마 잠들었던 사람들은 해가 뜨기 한참 전인 오전 5시30분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날이 밝은 후에도 5∼6명이 광장에서 자고 있던 전날과도 비교가 됐다.
휠체어를 탄 노인을 부축하고 택시에 오른 한 할머니는 "나도 남편도 몸이 불편해 혹시라도 여진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광장에서 잤다. 며칠째 여진이 없어서 다행이다. 밤에 추워서 이젠 집에서 자야겠다"고 말했다.
노부부가 한기를 피하기 위해 깔았던 비닐과 종이 상자만 남기고 떠난 광장에선 청소부들이 새벽까지 영업했던 노점의 음식물 잔해를 물로 씻어내기 위해 바삐 손을 놀렸다.
하지만 모로코가 돌아온 일상을 오롯이 되찾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번 강진으로 인한 희생자가 3천명에 육박했고, 부상자도 5천명을 훌쩍 넘긴 상황이다. 매몰자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72시간을 넘기면서 '기적'에 대한 희망의 끈은 희미해지고 있고, 당국의 늑장 대응이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모로코 국민의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강진이 발생했을 당시 모하메드 6세 국왕이 프랑스 파리의 사저에 머무르고 있던 사실이 알려지며 국왕이 그동안 수시로 프랑스로 오가며 노려온 호화생활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모로코 정부 당국이 각국이 내민 지원의 손길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사이 살아남은 자들은 생계에 대한 막막함 속에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와중에 평범한 주민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며 회복과 재건의 연대에 나섰다는 희망적 소식도 전해졌다.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모로코 마라케시와 항구 도시 아가디르를 잇는 10번 국도는 지난 10일 부분 개방된 직후부터 구호 차량 행렬이 끝없이 몰려들며 때아닌 교통체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마라케시, 카사블랑카, 라바트, 탕헤르 등 전국 각지에서 온 모로코인들이 피해 지역인 탈랏냐쿠브에 구호품을 직접 전달하겠다고 나서면서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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