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북에 핵무력 ‘기술 지원’ 시사···한반도 ‘신냉전 그늘’ 짙어진다

박광연 기자 2023. 9. 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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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푸틴, 4년5개월 만에 회담
러, 전쟁용 무기 제공 요구 가능성
북, 군사정찰위성 기술지원 기대감
군사협력 강화로 한반도 정세 ‘파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 4년5개월 만에 만나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개발과 관련한 러시아의 기술 지원 방침을 사실상 확인했다. 두 정상은 군사 협력을 중심으로 양국 관계 강화를 공언했다. 북핵 고도화와 진영간 대결이 심화되며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 먹구름은 한층 짙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정상이 만난 장소가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라는 점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의 핵심 화두가 군사 협력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러시아가 발전된 우주 기술력을 북한에 전수할 가능성을 과시한 것이다.

핵 무력 고도화에 천착하며 기술적 난관에 봉착한 북한의 사정이 고려된 결과로 보인다. 북한은 올해 최우선 과제였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두 차례 실패한 터라 오는 10월로 예고한 발사 성공을 위해 기술적 진전이 시급하다.

2021년 북한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향후 5년 동안의 핵 무력 고도화 주요 과업을 달성하려면 러시아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다탄두 개별 유도 기술과 정상 각도 발사를 위한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초대형 핵탄두 생산 등이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 기술 지원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회담 모두발언에서 “우주 강국의 심장과도 같은 이 발사장(우주기지)에서 우주 강국의 현주소와 앞날에 대해 우리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신 데 대해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호응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주기지 입장에 앞서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에 왔다”며 “북한 지도자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기술 지원의 대가로 우크라이나 전쟁용 무기 제공을 북한에 요구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회담에서 무기 거래가 논의될지에 대한 질문에 “이웃 국가로서 우리(북·러)는 공개되거나 발표되지 않아야 할 민감한 분야의 협력을 이행한다”고 사실상 시인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후 만찬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직접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지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이는 대러 무기 지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시사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방북 직후 군수공장들을 잇따라 찾아 무기 지원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두 정상은 이해관계가 부합하는 군사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관계를 한층 격상시키는 데 합의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이 회담 모두발언에서 북·러관계가 대외 정책의 최우선 순위라고 강조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경제 부문에서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중국보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관계에 힘을 실으며 핵 무력 고도화에 몰입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두 나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도 회담 의제로 다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각각 “인민들의 복리 증진을 위한 협조” “경제와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한 협조”를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우리가 방조(도움) 받을 문제가 많다”고 발언한 만큼 러시아의 대북 경제 지원 확대 방안이 논의됐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후 러시아 매체와 인터뷰에서 “농업 분야 관계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반도와 유럽의 정치·군사적 정세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만찬에서 이를 “심도 있게 토의했다”며 “전략전술적 협동과 지지 연대를 가일층 강화해나갈 데 대해 만족한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고 말했다.

한반도 정세의 경우 지난달 미국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준군사동맹’ 수준으로 강화되고, 지난 4월 한·미 ‘워싱턴 선언’ 이후 미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상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러 군사 협력 강화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은 상당하다. 최근 급속도로 고도화된 모습을 보이는 북한의 핵 무력이 러시아 도움으로 더욱 강화하면 한반도 핵 위협은 한층 격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러 정상이 연합군사훈련 시행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향후 동해상을 중심으로 한·미·일과 북·러가 군사적으로 직접 대치하는 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적 밀착으로 나아가는 ‘레드라인’을 넘으면 한·러관계 악화도 불가피하다. 이에 동북아시아 ‘신냉전’ 구도는 뚜렷해질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러시아가 군사·경제협력을 가속하기 위해 대북제재 완화까지 논의했을 경우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공조 체제가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번번이 추가 대북 제재에 훼방을 놓아온 상황에서 더 나아가 대북제재 수단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후 러시아 매체와 인터뷰에서 군사·기술협력과 관련해 “러시아는 국제 의무를 준수한다”며 “하지만 규정 내에서 협력할 기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도 가볍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가 확실한 우군을 확보해 무기까지 받는다면 전쟁은 더욱 장기화되는 수렁으로 접어들 공산이 크다.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북한에 본격적으로 대응해 동북아에서 한·미·일과의 안보협력을 더욱더 강화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는 북한이 우려해온 시나리오이며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에 ‘자충수’로 작용할 소지로 평가된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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