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충전 표준으로 떠오른 테슬라 NACS…우리나라의 향방은
최근 미국 전기차 시장의 충전 표준 규격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미국에서 테슬라의 독자 충전 규격인 ‘NACS(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를 따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테슬라는 미국에서 NACS를 고수하며, 회사의 급속 충전소인 ‘슈퍼 차저(Supercharger)’를 자사 차량만 이용하도록 폐쇄적으로 운영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 정부가 테슬라에 ‘국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법(NEVI)’에 따른 전기차 충전소 건설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슈퍼차저 개방을 요구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오는 2027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건설 보조금에 75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조금을 가져가고 싶으면, 타사 차량도 테슬라의 충전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개방은 했는데 충전기 단자 자체가 달라서 이용할 수 있는 타사 차량이 없었다. 미국의 충전 표준 규격은 ‘DC 콤보(CCS1)’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슬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현지 차량이 CCS1 타입을 적용하고 있다. 마치 갤럭시 스마트폰이 USB-C 케이블을, 아이폰이 라이트닝 케이블을 써서 충전기가 호환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인 셈이다.
테슬라는 호환성을 높이고자, ‘매직독(Magic Dog)’을 출시했다. 매직독은 기존 슈퍼차저 충전기에 매직독을 연결해 CCS1 규격을 사용하는 전기차도 슈퍼차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이는 슈퍼차저를 개방하는 데 더욱 속도를 붙였다.
◆ 슈퍼차저 개방 후, 이어지는 주요 기업들의 NACS 채택…왜?
현재 테슬라는 급속충전기를 기준으로 미국 내 1900여개 충전소, 총 2만여 대의 충전기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타사가 주로 사용하는 CCS1 타입의 충전소는 5400곳. 충전소 자체만 놓고 보면 더 많지만,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충전기는 1만 1000여개에 불과하다. 결국 미국에 설치된 충전 인프라의 약 3분의 2가 테슬라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인프라 투자에 다소 뒤처졌던 다른 자동차 제조사는 아예 테슬라의 충전 규격을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벤츠, 닛산, 리비안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혼다까지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의 독자 규격인 NACS를 적용하겠다고 전했다. 이는 충전 단자를 바꾸는 게 인프라 구축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위아래로 완속과 급속 충전용 충전 단자가 합쳐진 DC 콤보와 다르게, NACS는 단일 단자로 급속 충전과 완속 충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CCS1 충전기보다 NACS는 훨씬 더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충전기를 연결할 때 힘을 덜 들이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주요 기업들이 테슬라 규격을 채택하면서, 테슬라의 충전 규격이 새로운 북미 표준으로 자리를 잡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그동안 미국 수출을 위해 현지 충전 규격인 CCS1 타입을 표준으로 적용한 우리나라의 고민은 깊어졌다.
◆ 나라별 충전 규격과 우리나라가 미국의 급속 충전 규격을 따르게 된 이유
현재 각 국가마다 충전 표준 규격은 제각기다. 나라마다 환경 조건과 현지 기업에 유리한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테슬라 규격 채택이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을 알아보기 전에 지역별 전기차 충전 표준 규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미국과 한국은 DC콤보의 CCS1, 유럽은 CCS2 타입을 표준으로 한다. 일본은 차데모(CHAdeMO), 중국은 GB/T를 사용한다. DC콤보는 2011년 GM, BMW 등 7개 기업이 개발한 충전방식이다. 완속 충전과 급속 충전 모듈이 위아래로 나란히 배치돼 하나의 충전기를 구성한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CCS1과 유럽의 CCS2의 차이는 완속 충전 모듈에 있다. CCS1은 5핀의 J1772를, CCS2는 7핀의 메네케스를 완속 충전 모듈로 적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우리나라가 CCS1을 급속 충전 표준으로 적용한 건, 국내 차량 주력 수출국이 미국 시장이었던 탓이 크다. 지난 2017년 한국국가기술표준원이 CCS1을 표준으로 정했을 때, 자동차 산업의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 CCS1을 표준으로 정한다고 말했었다. 실제로 CCS1을 적용한 덕분에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데 유리한 점이 있었다. 올해 상반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만 봐도 테슬라가 33만 6892대로 1위, 현대차와 기아가 3만 8457대로 2위를 차지했다.
◆ NACS가 미국 표준으로 떠오르는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까?
하지만 CCS1은 미국의 송전 방식인 단상 220V에 맞게 개발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3상 380V를 송전 방식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단상과 3상의 ‘상’은 위상을 말하며, 위상은 어떤 물질이 이동해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위치 에너지가 있는 상태다. 단상 220V는 위상이 없는 중선과 위상이 있는 전압선 한개, 총 두 개의 선을 사용해 220V 전기를 만들어낸다. 반면 3상 380V는 위상이 없는 중선과 위상이 있는 전압선 3개를 연결해 380V의 전기를 만든다. 그래서 3상 380V는 단상 220V에 비해 더 큰 전력을 수송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단상 220V 송전 방식에 최적화된 CCS1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충전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완속 충전시,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CCS1은 단상 전기를 사용해 완속 충전 시 3~7kWh로 제한된다. 그래서 완속 충전 시 충전 시간은 10시간 내외로 걸린다. 반면 유럽의 CCS2는 3상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 완속충전 시 22~43kWh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이론상 늦어도 5~6시간 만에 완속 충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유럽의 CCS2를 표준을 적용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많다.
만약 NACS 방식이 미국의 새로운 표준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국내 송전 방식에도 맞지 않는 CCS1 타입을 쓰는 유일한 국가가 된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시장과 단절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표준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NACS를 채택하면 될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업계 전문가들은 NACS 역시 미국 기업 테슬라가 개발한 규격인 만큼, 단상 배전에 최적화돼 있다고 말한다. NACS를 채택한다면 완속 충전 시 이득이 없는 건 지금과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실정을 생각한다면 유럽의 표준인 CCS2로 바꾸는게 합리적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직 전기차 보급 초기인 만큼, 인프라가 더욱 확대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국내 실정에 맞는 규격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테크플러스 이수현 기자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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