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첨단 군사기술 얻었나…'국제 왕따' 수렁엔 더 깊이

김지헌 2023. 9. 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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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기지서 만난 푸틴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지원 공언
최신 전투기 공장도 방문할 듯…'전쟁범죄 혐의자' 손잡고 고립 심화 자초
북러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김정은·푸틴 (아무르[러시아]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지난 2019년 4월 회담 이후 4년 5개월 만에 대면했다. 2023.09.13 besthope@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세계가 경고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를 위협할 첨단 군사기술에 접근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그는 한때나마 추구했던 '정상국가'의 지도자에선 더욱 멀어지게 됐다.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악수했다. 2019년 4월 두 사람의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 이후 약 4년 5개월 만의 대면이 성사됐다.

회담 장소가 우주기지라는 점은 만남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지난 5월 31일과 8월 24일 두 차례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을 러시아가 돕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북한 위성 개발을 도울 것이냐는 현지 매체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장소 선정 이유를 에두르지 않고 공개했다.

지난 10일 오후 전용 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출발한 김정은이 12일 오전 국경을 넘어 러시아 하산에 도착했을 때 영접을 나온 러시아 측이 그에게 건넨 선물 또한 소련의 유구한 우주 개발 역사와 관련된 물품들이었다.

세계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과 소련 시절 로켓 개발 책임자 세르게이 코롤료프 등의 사진이 선물이었다. 러시아 또한 김정은이 이번 방문에서 무엇을 갈구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북러 정상이 만난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AFP=연합뉴스]

보스토치니 외에 현재까지 알려진 김정은의 방문 예정 장소로는 하바롭스크주 산업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의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이 있다.

1930년대 설립됐다고 알려진 이 공장에서는 과거 6·25전쟁에서 유엔군에 맞섰던 미그(MiG)-15를 생산했고 지금은 러시아의 최첨단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수호이(Su)-57을 제작하고 있다.

수호이-57은 기체 양산이 지연되고 있기는 하나 현시점 세계 최강 전투기로 불리는 미국 F-22에 필적할 만한 성능을 지녔다고 알려졌다.

지상 기갑이나 미사일 전력에 비해 형편없다고 평가되는 북한 공군에 당장 이런 5세대 전투기 운용 역량이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러시아의 첨단 항공 기술이 일부나마 북한에 넘어가면 한미의 방위 태세에 부담이 될 것은 자명하다.

김정은의 이번 방러에는 김광혁 공군사령관이 동행했으므로 북러가 공군 분야 협력을 논의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김정은의 방문 가능 장소로 거론되는 곳으로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부도 있다.

북한은 핵탄두 탑재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잠수함을 지난 8일 공개하면서 앞으로 핵 추진 잠수함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잠수함 전대를 주력으로 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사거리의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전략핵잠수함(SSBN) 4척, 핵 추진 순항미사일 잠수함(SSGN) 6척 등을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가 지난해 2월 미국 SSBN의 근거지 중 하나인 미국 조지아주 킹스베이 잠수함 기지에서 확장억제수단 운용연습(DSC TTX)을 진행하며 대북 억지력을 과시했던 것을 북러가 모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러시아 태평양함대다.

김정은 수행단으로 김명식 해군사령관도 포함된 만큼 고위급 해군 협력과 함께 해군력 중에서도 북한이 중점을 두고 추진 중인 핵 추진 잠수함 분야 기술이전 논의가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잠수함 [타스=연합뉴스 자료사진]

해·공군 사령관뿐 아니라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 강순남 국방상 등 군부 최고위층이 모조리 동행한 점으로 미뤄 특정 분야 기술을 넘어 연합 군사훈련 등 군사 분야 전반을 놓고 북러 간 심도 있는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군사·기술 협력 논의 여부에 대해 "모든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고, 크렘린궁 대변인은 북한과 러시아가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고 거들어 이런 관측을 사실상 인정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첨단 기술을 확보하는 길을 뚫은 것이며, 이와 동시에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는 길에서는 더욱 멀어졌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의 전쟁범죄 혐의로 지난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 영장이 발부된 '도망자' 신분이다.

그는 ICC 회원국에 입국할 경우 체포될 수 있어서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등 해외 방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초 국제사회의 외톨이였던 김정은은 이런 전범 혐의자와 악수하고 회담함으로써 정치·외교적 고립의 심화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은 2012년 권력 승계 이후 북한을 군부 중심의 통치에서 노동당 중심의 '사회주의 정상국가'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조금씩 보여왔다. '불량국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무력 도발, 유엔 제재, 재차 도발을 통한 제재 무시, 추가 제재라는 악순환을 거듭해온 끝에 침략 전쟁 중인 러시아를 지원하고 대가 챙기기에 나서면서 '정상국가' 상태와는 한참 멀어졌다.

이번 회담에 즈음해 북한과 러시아를 두고 미국 외교가 등에서는 이미 '왕따 국가'(pariah state)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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