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우정 봉우리’에서 만나, 인생이라는 각자의 산길로 향하다···‘여덞 개의 산’[리뷰]

최민지 기자 2023. 9. 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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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소년·산 소년의 30년 이야기
알프스 장대한 풍경 속에 담아내
<여덟 개의 산>은 이탈리아 알프스를 배경으로 도시 소년 피에트로와 산에 남은 유일한 아이 브루노의 우정과 재회를 그린 영화다. 영화사 진진 제공

<여덟 개의 산>은 ‘우정 영화’라는 타이틀 안에 가둬지지 않는 영화다.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30년에 걸쳐 펼쳐지는 이야기는 광활한 알프스의 자연만큼이나 장대하다. 떠날 수 없는 자와 머물지 못하는 자가 서로를 보듬으며 나누는 진한 우정은 인간의 정체성과 사랑, 인생 이야기로 그 가지를 뻗어나간다.

영화는 1984년 여름 이탈리아 알프스의 작은 마을 그라나에 놀러온 ‘도시 소년’ 피에트로가 ‘산 소년’ 브루노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브루노는 14명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남은 마지막 아이다. 11세 동갑내기인 두 소년은 금세 가까워진다. 매년 여름 만나 함께 자연을 누비며 우정을 쌓은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브루노가 벽돌공인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10여년이 흐른 뒤, 각각 벽돌공과 작가 지망생이 된 브루노와 피에트로는 재회한다. 브루노는 피에트로의 아버지와 생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알프스 산지에 집을 짓기로 하고, 아버지와 소원했던 피에트로가 동참한다. 둘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으며 집을 완성하고, 두 사람의 우정도 쌓이는 벽돌처럼 재건된다. “여긴 우리 두 사람의 집이야. 매년 여름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난 피에트로와 브루노의 삶은 일과 결혼, 출산 등 여러 갈림길에서 각자 다른 선택을 하며 경로를 달리한다. 산에서 ‘산 사람’과 결혼해 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브루노와 달리 피에트로는 어느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세계를 여행한다. 제목인 ‘여덟 개의 산’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 속 산 수미산(須彌山)에 대비되는 공간으로, 산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브루노와 세계를 여행하는 피에트로의 삶을 은유한다. 떠날 수 없는 자, 머물지 못하는 자의 우정을 가운데 놓고 흐르던 영화는 이 지점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인생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탈리아 최고 권위 문학상 ‘스트레가상’을 받은 파올로 코녜티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벨기에 출신 펠릭스 판흐루닝언, 그의 부인이자 배우 겸 작가인 샤를로트 판데르메이르스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부부 감독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전체 분량의 80% 이상이 이탈리아 북서부의 산악지대에서 촬영됐다. 제작진은 계절마다 바뀌는 알프스의 얼굴을 담기 위해 해발고도 3300m의 고산지대에 전체 세트를 짓고 7개월간 지냈다. 알프스의 장대한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 것은 이 같은 촬영팀의 노력 덕분이다.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내리는 카메라는 때로 위태롭게 흔들린다. 알프스에 함께 오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2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47분.

영화사 진진 제공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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