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챙긴 러, 우크라戰 장기화…미사일 기술 얻은 北, 美향해 도발

김성훈 기자(kokkiri@mk.co.kr), 한예경 기자(yeaky@mk.co.kr) 2023. 9. 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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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보지형 격랑
김정은·푸틴, 러 우주기지 회동
푸틴 "北 인공위성 개발 돕겠다"
값싼 북한 노동자 파견도 조율
캠프데이비드 3국 공조 시험대
북중러 세력 균형 미묘한 변화
18일 중러 외교장관 회담 예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둘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앞줄 왼쪽 둘째) 일행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현지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가 전격 정상회담을 하고 군사협의를 시도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이 격랑에 휩싸였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채택한 한·미·일 3국 간 협의가 처음으로 시험대에 오른 데다 북한이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 대신 러시아와 손을 잡으면서 북·중·러 간 힘의 균형이 바뀐 탓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문제를 아시아에 끌어들였듯이, 북·러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문제를 유럽에까지 확산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크렘린궁이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이날 오후 1시께 만났다. 이들은 함께 걸으면서 기지 내 시설을 둘러보고, 김 위원장이 멈춰 서서 현지 안내자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어지는 정상회담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내 '앙가라' 로켓이 조립 중인 발사체 설치·시험동에서 이뤄졌으며 양국 간 무역, 군사협력 및 인적 교류 등 다양한 현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북·러 간 무기 거래로 인해 교착 국면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욱 장기화 양상을 띄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러시아에 필요한 각종 포탄·미사일을 공급하는 '불법 무기고' 역할을 맡게 되면서 러시아의 전쟁 지속 능력이 크게 확충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 정치·경제적 부담과 공급망 난맥상은 상당 기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대규모 노동력을 공급받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을 개연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징집으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북한에서 값싸게 파견받는 데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도 건설 분야 책임자인 박훈 내각 부총리를 수행단에 포함시켜 대(對) 러시아 인력 수출로 외화 수급 활로를 뚫겠다는 계산이어서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 논의는 지난달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이 채택한 '3자 협의 공약'에 대한 첫 번째 도전으로 간주된다. 이 문건은 역내 군사·경제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북핵 도발 등에 맞서기 위한 3국의 협력 체제를 문서화한 것이다. 문건을 채택한 지 한 달 만에 3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발생하면서 어떻게 대응할지가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외교부는 이날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 나마즈 히로유키 일본 북핵수석대표와 3자 유선 협의를 하고 북·러정상회담 직전 미사일 도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캠프데이비드에서 이뤄진 3국 간 대북 공조 강화 합의에 따라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해 나가겠다"며 유럽의 우려를 언급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수행해 체코를 방문 중인 김 본부장에 따르면 체코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시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중·러 3각 관계를 주도했던 중국 대신 러시아가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이들 간에 미묘한 세력 균형 변화도 감지된다. 2000년대 초반 북한의 비핵화 논의는 남·북·미·중 4자 회담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이 참여를 요구하고, 북한이 러시아를 끌어들이면서 6자 회담으로 공식 출발했다. 러시아는 북한 핵무장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면서도 한반도 정세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채 중국을 따라가기만 했다. 하지만 북·러 간 군사협의로 양국이 급격히 가까워지자 중국은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의 제재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할 것으로 점쳐진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오는 18일 모스크바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이 올해 안에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서 지난 7월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 담당 보좌관도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 초청에 따라 오는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가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는 데 맞춰 중국에도 적절한 설명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성훈 기자 /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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