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굴리는데 영 신통찮네"…적자 쌓이는 로보어드바이저社 [긱스]
1세대 '핀트' 경영난에 위기감
수익률 연 4%대…기대에 못미쳐
옥석가리기에 돌파구 찾는 업계
크래프트·퀀팃, B2B 사업 집중
파운트는 퇴직연금 시장 공략
"시장 한계…증권사와 손잡아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개인 투자 자문을 돕는 로보어드바이저(RA) 시장이 급격한 침체에 빠졌다. 국내에 관련 솔루션이 소개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 해외처럼 ‘대어급’ 플랫폼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익 악화가 심해지면서 플랫폼 옥석 가리기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시장을 주도했던 은행권은 펀드 판매용으로 활용한 무료 추천형 로보어드바이저를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개인 대신 금융회사에 운용 알고리즘을 제공하는 기업 간 거래(B2B)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곳도 나왔다. 경영난에 투자 유치 난항까지 겹치며 위기감이 돌고 있는 가운데 퇴직연금 시장이 관련 업계의 회생 돌파구가 될지 관심이다.
확 꺾인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13일 코스콤에 따르면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 등록 알고리즘 기준으로 지난 8월 운용자산(AUM)과 계약자 수가 급감했다. 7월 말까지 1조9425억원을 유지한 운용자산 규모는 8월 5162억원으로 73% 이상 급감했다. 계약자도 37만7126명에서 29만9154명으로 줄며 7만7972명이 빠져나갔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은행들이 펀드 판매 수단으로 활용하는 ‘무료 추천형’, 고객에게 유료로 투자 자문만 제공하는 ‘자문형’, 고객 자산을 맡아 매수·매도하는 ‘일임형’으로 나뉜다. 시장이 쪼그라든 건 시중은행이 마케팅 수명이 다한 무료 추천형 로보어드바이저를 대거 정리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내 1호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 ‘핀트’를 운영한 디셈버앤컴퍼니가 경영난 끝에 사모펀드에 넘어간 게 방아쇠를 당겼다.
핀테크 플랫폼이 주도하는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리오’, ‘에임’ 등 1세대 자문형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번 테스트베드 집계에서 제외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체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투자 자문 계약자금은 6월 기준 29조8747억원에 이른다.
1세대 로보어드바이저의 실패
로보어드바이저는 2016년 초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전으로 AI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2019년 들어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 규제가 대폭 개선된 것을 계기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가장 선두에 나선 건 엔씨소프트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가 최대주주였던 디셈버앤컴퍼니다. 2013년 설립 후 6년간 기술 개발 끝에 독보적인 AI 자산 배분 엔진을 개발했고, 2019년 4월 국내 최초 AI 비대면 투자 일임 플랫폼 핀트를 출시했다. 배우 전지현을 내세워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적자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회사는 지난 6월 말 기준 결손금이 800억원으로 자본 잠식 상태다. 결국 지난달 결손금을 떠안는 조건으로 사모펀드 운용사 포레스트파트너스에 경영권을 넘겼다.
한 벤처캐피털(VC) 대표는 “테마주 중심의 직접 투자가 대세인 국내 주식시장에서 AI가 더 나은 수익률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코스콤이 집계한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 연간 수익률(13일 기준)은 4.49%로 코스피지수(6.13%), 코스닥지수(13.73%) 수익률보다 낮다.
B2C 대신 B2B로 선회
개인 대상 자문·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시들해지면서 금융기관에 AI 운용 솔루션을 제공하는 로보어드바이저도 등장했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오는 11월 LG AI연구원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AI 모델을 활용한 ETF를 상장하기로 했다. 크래프트는 2019년 국내 처음으로 AI가 운용하는 액티브 ETF ‘AMOM’을 미국 증시에 상장시켰으며, 국민연금을 비롯해 20곳이 넘는 금융기관에 AI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로부터 1억46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크래프트 출신이 설립한 아크로스테크놀로지스도 B2B 사업으로 ETF 설계만 맡는 플랫폼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퀀팃은 지난해 11월 기관용 AI 포트폴리오 주문집행 서비스를 출시하고 KB자산운용과 기술 협력 제휴를 맺었다.
퇴직연금 시장이 돌파구 될까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정체한 가운데 퇴직연금 시장이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7월 퇴직연금 적립금에 대한 로보어드바이저의 투자 일임 서비스 규제샌드박스(유예) 실증특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퇴직연금 포트폴리오 제시는 가능했지만, 매수·매도 등 일임 서비스는 불가능했다.
지난해 포스증권 2대 주주에 오른 파운트는 완전 인수를 추진하며 연금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자회사 파운트투자자문은 올해 1분기 운용자산 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콴텍은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으로 제휴를 확장하고 있다. 미국도 퇴직연금(401K) 시장이 열리면서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커졌다. 401K 운용자산의 절반 이상이 로보어드바이저로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퇴직연금 시장이 열릴 경우 진정한 승자는 로보어드바이저 플랫폼이 아니라 증권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9월 출시한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가입 계좌가 1만 개를 넘었다고 밝혔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많은 핀테크 플랫폼이 등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통 금융회사 중심으로 시장이 공고해지고 있다”며 “로보어드바이저든 조각투자 플랫폼이든 증권사와 전략적 협업을 단단히 맺는 곳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로보어드바이저업계는 박한 수수료 구조와 시장 침체로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투자 유치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올해 들어선 퀀팃만이 지난 3월 300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핀테크 벤처펀드를 운용하는 한 VC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보다는 해외 송금·카드 등 결제 플랫폼을 유망하게 본다”며 “보험·은행도 신규 고객을 늘릴 수 있는 비금융 플랫폼에 투자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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