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한자리 모인 ‘가족’들···장욱진의 ‘동심·이상향’ 완성하다

도재기 기자 2023. 9. 1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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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회고전’ 14일 개막
한국적 정서에 밀도 높은 화면
사랑 받는 근·현대미술 대표 화가
유화·먹그림·도자기 등 270여점
장욱진의 대규모 회고전에는 30여 점의 가족도를 남긴 장욱진의 첫 가족도 ‘가족’(1955, 캔버스에 유화물감, 6.5× 16 ㎝, 국립현대미술관, 왼쪽)이 일반에 최초 공개된다. 오른쪽은 함께 선보이는 1972년작 ‘가족’(캔버스에 유화물감, 7.5×14.8㎝-,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툭툭 튀어나온다. …(기쁨·슬픔·욕심·집념 같은 마음속의 잡다한 얼룩과 찌꺼기들을) 하나하나 지워 간다. … 이런 텅 비워진 마음에는 모든 사물이 순수하게 비친다. 그런 마음이 돼야 붓을 든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수놓은 장욱진(1917~1990)은 “순수하게 비워진 마음”에서 붓을 들었고, 그렇기에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고 말했다.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이중섭(1916~1956) 등과 동시대를 산 장욱진의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일상 삶과 작품이 하나가 된 진정성으로도 유명한 그다. 한국적 정서로 맑은 동심의 세계, 자연과 어우러진 평화로운 이상향이 느껴지는 밀도 높은 화면은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4일 개막하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은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대규모 전시다. 유화는 물론 먹그림·매직펜 그림·삽화·판화·도자기 그림 등 270여점이 나온다. 학창 시절부터 60여년 화업 인생의 시기별 대표작들이 망라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 8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일본 소장가로부터 구입해 6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의 가족도 첫 작품인 ‘가족’(1955)과 일부 삽화 등도 최초로 공개된다. 또 아카이브 100여점을 통해 초기 행적을 보완하고 작품명·연보 오류를 바로잡은 학술적 연구성과들도 선보인다.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됐다.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1부,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의 상징성·의미와 조형·주제 의식을 분석하는 2부,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다룬 3부, 19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한 노년기의 4부다.

장욱진의 ‘까치’(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31cm, 국립현대미술관, 왼쪽)와 ‘새와 나무’(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32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곳은 2부다. 장욱진의 작품은 ‘나무’ ‘새(까치)’ ‘해와 달’ ‘집’ 등 특정 소재의 반복과 유독 작은 크기로 유명하다. 자칫하면 단조롭거나 도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그림이란 의미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이유를 전시는 보여주는 것이다. 반복되는 소재들이 지닌 상징성과 의미, 도상적 특징의 변모 과정, 그림 구성 방식 등의 분석을 통해서다.

소재에서 ‘까치’는 그의 분신 같은 존재이며, ‘나무’는 온 세상을 품은 우주, ‘해와 달’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로 분석된다. 작은 화면에 반복되는 소재들에도 그의 작품들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안기는 것은 치밀하게 이뤄진 조형미, 화면을 꽉 채운 밀도감, 전반적인 완성도 덕분이다. 장욱진은 그림 구성에서 안정적이고 균형미를 주는 대칭구도를 즐겼다. 하지만 단조로울 수 있는 구도이기에 그는 소재들의 형태·방향·색감 등을 작품마다, 한 작품 내에서도 다르게 표현하거나, 십자형·원형·마름모형 등 다양한 대칭방식 활용 등으로 조형적 섬세함을 보여준다.

좁은 화면 속에서도 자유로운 변주가 이뤄진 것이다. ‘까치’(1958) ‘새와 나무’(1961) ‘수하’(1954) ‘마을’(1984) ‘언덕 위의 가족’(1988) 등의 작품을 통해 그의 조형의식을 살펴보는 것은 그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이유를 분석하는 일이기도 하다.

전시기획자인 배원정 학예사는 “전시장에 ‘콤포지션’이란 코너를 마련해 장욱진의 그림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했다”며 “그는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하고 한국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연 화가”라고 밝혔다. 다음달 장욱진 예술세계를 다룬 저서를 펴내는 정영목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는 “한마디로 수공예적 장인정신이 깃든 밀도 높은 작품이란 인식을 갖고 작품을 관람하면 이해의 폭이 깊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욱진의 1951년작 ‘자화상’(종이에 유화물감, 14.8×10.8cm, 개인소장, 왼쪽)과 1973년작 ‘자화상’(캔버스에 유화 물감, 27.5×22cm, 개인소장). 20여년 차이 동안 작품세계의 변화가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1부에서는 학생 작품전에서 수상한 ‘풍경’(1937), ‘공기놀이’(1938)를 시작으로 문자의 추상화를 보여주는 ‘반월·목 半月·木’(1963), 뼈대·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를 그린 ‘자화상’(1973) 등을 만날 수 있다.

3부에서는 불교적 주제의 회화들과 먹그림·목판화 선집 등을 통해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들여다본다. 지난해 타계한 부인(이순경)을 그린 ‘진진묘’(1970), 해학성이 돋보이는 먹그림 ‘심우도’(1979) ‘무제’(1979) 등이 선보인다. ‘진진묘’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부인의 법명이다. 장욱진은 생전 자신·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드러내 작품전 날짜를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전후로 정한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는 먹그림 ‘심우도’(1979, 종이에 먹, 66.5×43.4cm, 개인소장, 왼쪽)와 치밀한 조형성을 드러내는 ‘마을’(1984, 캔버스에 유화 물감, 35.3×27.2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초의 가족 그림인 1955년작 ‘가족’
1964년 일본 소장가에 팔린 뒤 첫 전시
비슷한 도상의 1972년 ‘가족’과 나란히 걸려

가족도를 많이 그린 장욱진이 처음으로 그린 가족도로 ‘가족도의 전범’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가족’(1955)도 처음 공개된다. 1964년 전시에서 일본 소장가에게 팔린 작품이다. 당시 장욱진은 그 돈으로 막내딸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했지만 작품이 못내 아쉬웠던지 비슷한 도상의 ‘가족’(1972)을 다시 그렸다. 전시장에는 두 ‘가족’이 별도 공간에 나란히 걸려 있다.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장 화백의 장녀 장경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은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버지, 가족 모두에게 정말 헌신하신 분”이라며 “아버지는 워낙 말씀이 없으셨지만 가족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늘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대규모 전시가 제 생전에 다시 있을까 싶다. 아버지가 화가이셨구나 하고 다시 느낀다.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했다.

장욱진의 ‘공기놀이’(1938, 캔버스에 유화 물감, 65×8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장욱진의 ‘나무와 산’(1983, 캔버스에 유화물감, 29.7×29.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4부는 동양 정신성을 바탕으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했다고 평가받는 노년기 작품들로 구성됐다. 유화임에도 수묵화·수채화 같은 담백한 효과를 내거나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캔버스에 옮긴 듯한 작품들, 또 고구려 고분벽화와 조선시대 문인화·민화 등의 미적 요소를 변주한 작품들이다. ‘나무와 가족’(1982), 고구려 고분벽화 요소가 짙은 ‘시골풍경’(1986), 해학성·단순성·상징성 등 민화적 특정이 엿보이는 ‘닭과 아이’(1990), 타계 2개월 전에 그린 작품으로 죽음에 초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밤과 노인’(1990) 등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와 연계해 작품 감상프로그램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시는 내년 2월12일까지.

장욱진의 ‘밤과 노인’(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31cm, 개인소장). 타계 2개월전 작품으로 죽음에 대한 초연함을 볼 수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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