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만에 특례보금자리론도 축소···"당국이 정책혼선 자초"
◆ '50년 주담대' 사실상 퇴출
변동형 대출에 가산금리 적용
'스트레스 DSR'제도 도입 추진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 조기종료
서민·무주택자 실수요층만 지원
금융 당국이 13일 내놓은 ‘가계부채 대응 방안’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기간을 사실상 10년 단축한다는 게 핵심이다. 대출 한도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산정 만기를 줄여 차주가 받을 수 있는 총 대출금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규제는 은행뿐 아니라 보험사와 상호금융 등 전 금융권에 적용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50년 만기 주담대 관련 대출이 폭증세를 보이고 있어 신속한 조치를 통해 시장의 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면서 “합리적인 사유 없이 만기를 길게 설정하면 DSR 규제를 회피하는 일로 간주하겠다”고 강조했다.
당국이 ‘상환 능력을 명백하게 입증’하는 차주에 대해서는 50년 만기를 적용하기로 했지만 실제 적용 사례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60대 이상의 고령층뿐만 아니라 은퇴 후 소득이 불투명한 40~50대 차주 입장에서는 예외를 적용받기 어렵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금껏 50년 만기 대출을 받은 차주 중 40대 이상이 70%다. 50년 만기 수요가 가장 큰 고객층이 더는 이를 활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당국은 50년 상환이 가능한 20~30대의 대출 한도는 축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모호한 탓에 은행으로서는 관련 대출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많다.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임원은 “차주의 상환 능력을 최대한 꼼꼼하게 따져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책임을 묻겠다는 게 당국의 얘기”라면서 “나중에 어떤 식으로 꼬투리 잡힐지 모르는데 50년 만기를 적용할 은행이 있겠나 싶다”고 했다. 김태훈 금융위 거시금융팀장은 “상환 능력은 은행들이 금융감독원과 논의해 자체적인 내부 기준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면서 "차주의 소득뿐 아니라 기대 여명, 은퇴 시점, 퇴직연금 등 은퇴 후 소득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50년 만기 대출에 DSR(40%) 산정 시 만기 40년을 적용하면 차주당 대출 한도는 수천 만 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가령 연봉 6000만 원의 직장인이 연 4% 금리로 주담대(비규제 지역 9억 원 아파트 LTV 70%)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50년 만기를 적용했을 때 최대 5억 18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반면 40년 만기 적용 시에는 최대 대출금이 4억 7800만 원으로 전보다 4000만 원가량 감소한다.
대출 한도가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당국은 변동금리형 주담대에 대해서는 ‘스트레스 DSR’도 함께 도입할 계획이다. 대출 한도를 설정할 때 금리 상승 가능성을 감안해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이에 매년 갚는 원리금도 늘어 총 대출 한도는 보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가산금리를 1%포인트 부과할 경우 연 소득이 6500만 원인 차주가 연 4.5%, 40년 만기 주담대를 이용할 경우 대출 한도는 전보다 6000만 원 줄어든다.
당국이 50년 만기 주담대 산정 기준을 손본 것은 해당 상품에 수요가 몰리면서 가계대출 급등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금융위가 발표한 ‘가계대출 현황’에 따르면 금융권이 8월 새로 취급한 50년 만기 주담대 대출은 5조 1000억 원에 달한다. 같은 달 은행의 가계대출이 전달보다 6조 2000억 원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큰 틀에서 보면 올 들어 주택 경기가 살아나고 거래가 회복되는 게 가계 부채가 늘어난 근본 원인”이라면서도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50년 만기 주담대”라고 분석했다. 50년 만기 주담대가 건전성 규제를 우회하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만기가 늘수록 연간 원리금이 줄어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는 점을 노린 차주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당국은 이날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공급도 조기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정책금융 상품이지만 소득과 관계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고 DSR 규제도 적용되지 않아 가계대출을 늘린 원인으로 거론돼왔다. 김 팀장은 “특례보금자리론 공급 요건 개편은 한정된 재원을 서민과 실수요층 등 꼭 필요한 차주에게 집중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조치를 두고 당국이 정책 혼선을 자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부동산 경기를 띄우려 특례 상품을 내놨다가 급증하는 부채에 조기에 대출을 중단하면서 정책 신뢰도를 깎아먹었다는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기존 적격대출과 안심전환대출을 통합해 1월 말 출시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한 부동산 경기 문제가 있으니 어느 정도 대출 문턱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DSR만큼은 건드려서는 안 됐다”면서 “정부가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DSR도 적용이 안 되다 보니 부채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지적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백주원 기자 jwpai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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