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인데 창피하게”... CGV보다 인기 없었던 SK이노 유증, 주가도 미끌

노자운 기자 2023. 9. 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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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률 87.66%에 그쳐... 주가 4% 넘게 하락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본사. /뉴스1

SK이노베이션이 우리사주조합·구주주를 대상으로 한 1조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서 ‘완판’에 실패하면서 실망한 주주들의 매물과 기관의 공매도가 쏟아졌다. 결국 주가가 4% 넘게 떨어지며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6500억원 증발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신주인수권이 비싼 값에 거래되며 구주주 몫의 물량이 모두 소진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가가 계속 하락하면서 상당수 투자자가 청약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사주조합에 배정된 몫은 미달률이 더 높았는데, 직원들 역시 고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증자에 참여할 만한 매력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업체 SK온의 모회사라 2차전지 관련주로 분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성적이다.

◇ 청약 미달하자 쏟아진 공매도…주가 12% 더 빠지면 오히려 손해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SK이노베이션은 전 거래일보다 4.25% 내린 15만9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기관의 공매도 매물이 408억원어치 쏟아졌는데, 이는 전날 공매도액의 130%에 육박한다.

주가는 유상증자 청약 결과가 발표된 오전 10시 이후 가파른 하락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SK이노베이션은 11~12일 이틀간 우리사주조합과 기존 주주(신주인수권증서 보유자)를 대상으로 보통주 819만주를 공모했는데, 그 결과 717만9664주가 팔리며 청약률 87.66%를 기록했다. 청약이 미달하며 실권주 100만주가 나왔다. 앞서 진행된 CJ CGV의 유상증자 청약률 89.4%보다도 낮게 나온 것이다.

우리사주조합은 104만5368주를 청약했다. 우리사주 몫으로 총 163만8000주가 배정됐으나, 64%밖에 채우지 못했다. 구주주 몫의 신주는 상황이 그나마 낫다. 655만2000주 가운데 583만8490주가 청약됐다. 전체 물량의 89%를 소진한 것이다. 초과 청약된 주식은 총 29만5806주로, 1주 당 1주를 초과로 배정받을 수 있게 됐다.

당초 초과 청약에 나선 주주들은 물량을 많이 받지 못할까 봐 아쉬워하는 분위기였으나, 청약이 미달하는 바람에 초과 신청한 물량을 모두 받아 가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맞았다. 초과 청약은 신주인수권보다 많은 양의 주식을 더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신주인수권증서를 100개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총 120주까지 신청할 수 있다. 신주인수권을 덜 사고도 주식을 더 많이 살 수 있기 때문에 1주당 평균 단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청약 미달의 영향으로 주가가 하락함에 따라,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는 유증 참여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주 발행가액은 13만9600원이다. 13일 종가(15만9900원)에서 12% 더 하락하면 유증에 참여하는 게 오히려 손해가 된다.

◇ 웃돈 주고 신주인수권 샀지만 ‘상승’ 확신 못 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신주인수권에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상장한 SK이노베이션의 신주인수권(SK이노베이션 8R)은 상장일 시초가가 3만1550원에 불과했으나, 5일 내내 오르며 결국 31일 3만7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상장 당일 장 중 한때는 4만1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당시 구주 시세(17만~18만원대)와 1차 발행가액(15만8900원)의 차액이 1만~2만원대에 불과했지만, 신주인수권은 그 두세배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 거래된 것이다. 당시 투자자들이 예상했던 최종 발행가와 주가 격차가 꽤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신주인수권은 정해진 기간 내에만 사고팔 수 있으며 청약하지 않을 시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신주인수권에 웃돈이 붙었음에도 청약이 미달한 것은, 향후 SK이노베이션의 주가 전망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주주들이 있었다는 걸 방증한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주인수권을 행사하지 못한 건 아쉽겠지만, 유증 후 어차피 주가가 희석될 테니 그때 저가에 매수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사주조합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사주 청약 대출 금리가 4%에 육박하는 만큼, 향후 회사 주가가 대출금을 보전할 만큼 오른다는 확신이 없다면 섣불리 청약하긴 어렵다.

한편, 이번 청약 미달로 실권주 101만336주가 발생함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 일반 주주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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