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연금개혁과 세대간 연대의 원리
청년세대 의견 통로 넓히고
연령별 수익비 계산·공개하고
연공서열제와 패키지 논의해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지난 1일 장기재정전망에 기초한 연금제도 개편안을 발표함에 따라 연금개혁 공론화를 위한 구체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개편안은 적립기금의 고갈 시기를 2093년까지 늦춘다는 재정안정화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설계되었으며 보험료율 인상폭, 수급개시연령, 기금운용수익률 등 정책 수단의 조합에 따라 총 18개 대안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제시되었다. 모든 개혁 의제가 그렇듯 사회적 합의 도출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한국리서치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국민연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4%가 공감하였으나 연금제도에 대한 전반적 인식은 이전보다 악화되었다. 연금이 젊은 층에 불리한 제도라고 응답한 비율은 연령대별로 30대 이하 79%, 40대 70%, 50대 57%, 60대 40%의 분포를 보였다. 가능하다면 국민연금을 탈퇴하고 싶다는 비율은 30대 이하 및 40대 52%, 50대 35%, 60대 11%로 나타났다.
공적연금은 노령이라는 생애주기적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근로세대가 은퇴세대를 부양하는 제도로, 세대 간 연대라는 사회계약을 원리로 삼는다. 그런데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인식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청년 및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지는 방향으로의 일방적 연금 개혁은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할 수밖에 없다. 연금개혁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세대 간 연대와 상생이라는 제도 원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점들이 보완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연금개혁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더 큰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는 청년 세대의 의견을 반영할 보다 적극적 통로가 필요하다.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향후 공론화위원회와 이해관계자위원회를 구성하여 쟁점을 공론화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이해관계자위원회의 경우 사용자(경영자단체), 가입자(노조), 지역가입자 대표(자영업자 등)가 참여할 예정이므로 젊은 인구의 목소리를 대변할 기구로는 공론화위원회가 부합한다. 우리나라 20대 이상 인구의 연령대별 구성비는 20~39세 29.7%, 40~49세 18.4%, 50세 이상 51.9%이다. 인구수는 50세 이상이 과반을 점하지만 공론화위원회는 20~34세 청년층이 3분의 1 이상, 50세 미만 인구가 3분의 2 이상이 되도록 구성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둘째, 개편 시나리오별로 연령별 수익비(기여 대비 급여의 배율)를 계산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다. 재정계산위는 방안별로 세대 간·세대 내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대립하므로 국민들의 판단을 위해 대안별 장단점을 제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세대별로 부담이 차별화되는 연금 개편에서 시나리오별로 수익비의 차이가 투명하게 공표되지 않는다면 세대 간·계층 간 합의를 위한 논의는 공전될 가능성이 높다. 재정계산위 김용하 위원장의 이전 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민연금 수익비는 1945년생 3.746배, 1965년생은 3.014배로 3배 이상이며 1975년생 이후 세대는 2.460~2.696배인 것으로 추정되었다(현행 제도로 30년 가입 시).
셋째, 연금개혁은 젊은 세대에 불리하게 작동하는 다른 공적 및 사회적 제도 개혁과 정책 패키지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에서는 호봉제를 포함한 연공서열제가 대표적이다. 노동 분야에서 호봉제가 폐지되고 임금체계가 합리화된다면 이는 연금 개편에 따른 청년 및 미래 세대의 부담 증가를 상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세대별 자산 격차 확대에 따른 조세 부담 비중에도 조정이 요구된다. 경제적 불평등에서 세대별 자산 격차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재분배 재원에서 자산 과세를 확대한다면 이 또한 연금개혁에 따른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일부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 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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