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금융 파벌
금융권 파벌의식도 영향
사외이사 외풍에 안 흔들려야
승계때 공정성 논란 사라질 것
총자산 700조원을 웃도는 KB금융그룹을 이끌 수장에 양종희 부회장이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금융계에선 호평이 대부분이다. 이번은 금융사 스스로 오랜 기간 준비한 CEO 승계 절차에 따라 진행했고, 우려했던 금융당국 개입도 없었다. KB가 금융계에 좋은 선례를 남기며 이런 식의 승계 프로그램이 안착하길 바라는 모습이 많았다.
크게 확산되진 않았지만 사실 공정성 시비가 최근 일주일 정도 이어졌다. 양 부회장 선출은 의외라는 가정에서다. 이 같은 음모론은 금융권 특유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됐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출발점은 이렇다. 1년 새 한국 5대 금융그룹 수장 중에서 4명이 바뀌었는데, 굳이 나누자면 관료 출신과 내부 출신이 2명씩이다. 지역별로는 공교롭게 3명이 호남 출신이다. 이 때문에 KB 차기 회장은 관료 출신이 또 되긴 힘들 것이고, 지역도 비호남 출신이 유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능력을 떠나 호남 출신인 양 부회장은 순위에서 밀리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급기야 윤종규 회장의 보이지 않는 개입설까지 나왔다. 양 부회장은 같은 재무통으로 윤 회장의 복심으로 내부에서 불리고 있었는데 최종 후보로 낙점됐기 때문이다. 용산의 의중과 다른 사람이 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전부 확인되지 않은 얘기이고, 진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엔 빠진 부분이 있다. 실제 최종 결정은 윤 회장도, 당국도 아니다. 양 부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세운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사외이사들의 길고긴 논의과정은 쏙 빼놨다. 물론 승계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짜놓더라도 사외이사들이 회장이나 정치권, 당국이라는 외풍에 쉽게 흔들린다면 모든 게 허사다. 그렇다면 이번은 어땠을까. 양 부회장을 지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금융당국 반응에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잡음은 있었지만 문제 삼지 않는 것은 당국이 선출 과정을 신뢰한다는 의미다. 앞으로 KB와 양 부회장은 그 신뢰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할 숙제 또한 갖게 됐다.
음모론의 상당 부분은 사외이사 역할에 대한 의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절대적인 대주주가 없는 지배구조 탓에 최고경영진은 자기 세력화와 연임을 통한 장기 집권에 힘을 쏟기 마련인데, 중요한 축이 사외이사다. 이번 논란에서도 그들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공정성 시비는 애당초 일어날 수 없었다.
한국 금융계는 파벌 또는 라인이라는 잣대를 갖고 들이대면 모호했던 것이 또렷해질 때가 많다. 외환위기 직전 16개에 달했던 시중은행이 5개의 대형 시중은행으로 이합집산하면서 깊어진 특유의 문화다. 출신과 고향, 학교에 따라 라인은 분화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파벌은 중층화·입체화됐다. 자신과 배경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쳤고, 성장기엔 큰 힘이 됐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파벌은 집단봐주기로 빠져들기 십상이고, 금융사에선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때도 있었다. 계파는 지금도 금융권에서 상당수 만연해 있고 경영진의 눈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부산으로 옮겨간 금융 공기업에서 벌써부터 부산대를 비롯한 특정 대학 출신이 계파를 형성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지역 대학 출신을 30% 의무 채용하다 보니 본사가 서울에 있을 때는 없었던 계파가 만들어진 것이다.
금융계의 파벌의식은 바꿔 말하면 순혈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삼성 출신이 LG 사장으로 가고, LG 출신이 KT 대표로 갈 정도로 경쟁사에서 고위 임원을 뽑아오는 일이 일상화됐지만, 한국 금융업계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올해 회장과 행장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다들 은퇴를 준비 중이다. 이제는 경쟁사 출신이 행장과 회장으로 옮겨가는 모습도 나올 때가 됐다. 금융도 섞여야 산다.
[송성훈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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