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계약 1만명'이라고 자랑했는데…EV9 판매 저조한 까닭

강지용 2023. 9. 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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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트림에 옵션 더하면 찻값 1억원 육박
2WD 전용 저가형 모델 '라이트 트림' 출시 가능성

[아이뉴스24 강지용 기자] 기아가 야심 차게 출시한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이 국내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상황에서 기존 동급 내연기관 SUV의 약 2배에 달하는 가격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출발해 충남 부여군까지 약 210km 구간에서 기아의 첫 대형 전동화 SUV인 'EV9'를 시승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13일 기아에 따르면 EV9은 지난달 국내에서 408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출시 첫 달인 지난 6월 1334대, 7월 1251대가 팔렸는데, 8월에는 3분의 1로 감소한 것이다.

국내 최초 3열 대형 전동화 SUV인 EV9은 웅장함이 돋보이는 외관과 넓은 실내 공간, 그리고 뛰어난 동력 성능 등으로 주목받았다. 99.8킬로와트시(kWh) 대용량 배터리 기반 501킬로미터(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19인치 휠 2WD 모델 산업부 인증 완료 기준)를 달성했으며 최고 수준의 신기술도 대거 적용됐다. 지난 5월 3일 사전 계약을 시작한 기아는 "8영업일 만에 1만367대가 접수됐다"고 밝히며 흥행을 예고한 바 있다.

EV9의 초반 판매 부진 이유로는 높은 가격이 꼽힌다. 가격은 7000만원~8000만원대로 책정됐으나 최고가 트림에 옵션을 더하면 구매 가격이 1억원에 육박한다. 국고 보조금 기준인 차량 가격 5700만원을 넘기 때문에 보조금은 절반이 지원된다. 내연기관 SUV의 진입 가격이 3000~4000만원대인 것에 비하면 2배가량 비싸다.

출시 초기에 불거진 품질 이슈도 판매 부진의 원인이 됐다. 최근 기아는 '동력 상실' 가능성을 이유로 8000여대의 EV9을 리콜한다고 발표했다. 소프트웨어 설계 오류로 뒷바퀴를 구동하는 모터 제어장치 소프트웨어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통신 불량이 발생하면 전원 공급이 차단돼 주행 중 차량이 멈출 수 있다. 국내 출시 약 두 달 만의 일이다.

실내는 편평한 바닥과 긴 휠베이스 등 E-GMP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 넓은 공간이 장점이었다. 또 운전석 전면의 12.3인치 클러스터, 5인치 공조,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세 개의 디스플레이를 매끄럽게 이은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압권이었다. [사진=강지용 기자]

전기차 시장의 동향도 EV9 판매에 녹록지 않다. KG모빌리티는 지난 3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최초 공개된 토레스 EVX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중형 SUV임에도 4850만원부터 판매돼 보조금을 지급받을 경우 지역에 따라 3천만원대에도 살 수 있을 전망이다. BYD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해 경제성을 키웠다. 1회 충전 시 예상 주행 거리는 420km로 코란도 이모션보다 약 100km가량 더 긴 주행 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는 지난 7월 국내에 기존보다 2000만원 저렴한 모델Y 후륜구동 모델을 들여와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찻값을 크게 낮췄다. 보조금을 받으면 5000만원대 초반에 구매가 가능하다. 또한 테슬라는 2만5000달러(3200만원)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2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테슬라 전기차 7인승 SUV '모델Y' [사진=테슬라]

볼보자동차는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리미엄 소형 전동화 SUV EX30을 공개했다. 짐 로언 볼보 최고경영자(CEO)는 "EX30은 내연기관차와 유사한 가격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소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폭스바겐 역시 보급형 전기차인 'ID.2all'의 출시를 예고했다. ID.2all은 2만5000유로(3600만원) 이하의 가격으로 출시 예정이다.

기아가 전기차 생산에 주력하는 만큼 이번 판매 부진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이목이 쏠린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기아가 올 4분기 미국 시장에 EV9을 출시하면서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기아가 대형 전기 SUV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EV9의 저가형 모델을 출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기아는 올해 말 미국 시장에서 내수형 모델과 같은 제원(배터리 용량 99.8㎾h)의 차량 외에도 76.1㎾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한 2WD 전용 '라이트(Light)' 트림을 판매할 계획이다.

첫인상은 '강인하고 단단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각진 디자인이 돋보였고, 전면부의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과 '스몰 큐브 프로젝션 LED 헤드램프', '스타맵 LED DRL(주간주행등)' 등이 지금껏 국내에 출시된 SUV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줬다. [사진=강지용 기자]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 부사장은 지난 7월 올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대중화 시기에 접어든 전기차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경쟁이 격화된 상황"이라면서 "필요하다면 수익성 일부를 양보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두고 정면 돌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기차 시장의 가성비 경쟁에 관해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미 시장의 얼리어답터 고객들은 전기차 구매를 마친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며 "전기차 기업이 부진한 실적을 개선하려면 성능과 가격을 모두 고려하고 있는 남은 고객들에게 잘 어필하는 데 달려있다"고 조언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도 최근 기아의 종목 보고서를 통해 "수익성을 일부 포기하고, 전기차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가격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전기차 시대의 수익성은 차량 판매가 아닌 자율주행과 여러 서비스로 창출된다"고 강조했다.

/강지용 기자(jyk8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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