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제 감독, '무빙'의 초능력보다 놀라운 집념 [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2023. 9. 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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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공중 부양에 초인적 오감, 재생 능력 등 '무빙' 속 모든 초능력자들이 놀랍지만 진정한 능력자는 박인제 감독이 아닐까 싶다. 독보적인 연출력으로 웰메이드 한국형 히어로물을 완성, "죽어가는 디즈니+를 살려냈다"라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 것. 이에 최근 가장 핫한 연출자로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박인제 감독이다.

박인제 감독은 영화 '모비딕'(2011) 연출과 각본을 맡으며 데뷔한 뒤 '특별시민'(2017)을 선보였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 실화, 정치 드라마 등 묵직한 소재를 주로 다뤘던 그는 2020년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2'로 드라마 연출에 도전하는 이색 행보를 걸었다. 사실 박인제 감독은 영화계에서 이렇다 할 흥행 성적을 쓰지 못하며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러나 안방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는 달랐다. '킹덤' 시즌1 못지않은 매력을 지닌 조선판 좀비물을 만들어내며, 마침내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남다른 감각을 인정받은 것. 전 세계적인 성공을 맛본 박인제 감독은 강풀 작가와 손잡고 훨훨 비상, 차기작 디즈니+ 시리즈 '무빙'까지 흥행 홈런을 터뜨렸다.

특히나 '무빙'은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음에도 박인제 감독은 과감히 뛰어들며 기어코 K-히어로물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대체적으로 10부작 내외로 제작되는 여느 OTT 시리즈와 다르게 '무빙'은 20부작이라는 방대한 서사를 담았다. 더군다나 잘 만든 동명 원작 웹툰을 뛰어넘어야 하는 벽, 다양한 초능력 구현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게다가 플랫폼인 디즈니+는 국내에서 계속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던 터. 디즈니+의 사활이 걸린 '무빙'엔 한국 드라마 역대 최대 규모인 제작비 500억 원이 투입됐고, 그만큼 박인제 감독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짊어졌다. 기대와 우려 속 지난달 9일 첫선을 보인 '무빙'은 차별화된 연출과 짜임새 있는 서사로 공개와 동시에 입소문이 번지며 빠르게 돌풍을 일으켰다. 오죽하면 '무빙'을 보려 디즈니+에 가입할 정도로 신드롬급 인기를 형성, 심폐소생에 성공했다. 

박인제 감독은 "'무빙'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가, 제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무빙'은 가족 이야기를 한다는 것, 특히나 부모와 자식 간 얘기가 마음에 들었다. 또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무빙'에선 하늘을 날고 그간 시도해 보지 않은 게 많지 않나. 물론, 할리우드 영화에선 많이 나온 것이지만 한국에선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20부작이라는 긴 호흡 역시 처음 해보는 시도라 부담보다는 도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고 연출을 수락한 이유를 들려줬다.

원작자 강풀 작가와의 작업은 어땠을까. 박인제 감독은 "여느 작품이 그러했듯, 작가님과는 맨날 항상 부딪혔다(웃음). 그도 그럴 것이 작가와 감독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한 작품이 탄생되기까지 충분히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그런 작업이라 부딪히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본다. 더군다나 '무빙'은 보통 드라마와 다르게 영화 베이스였고 20부작이었다. 풀 콘티가 성경책 두께로 3권 정도나 돼서, 논의할 부분이 많았다. 또 강풀 작가님이 드라마 시나리오는 처음이시지 않나.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샀는데 그 안에 사용설명서 대신 설계도가 들어 있는 듯했다. 처음 써보시는 거니까 그건 당연한 거였다. 아마 대본집이 나오면 제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아실 수 있을 거다. 강풀 작가님과 다 달랐지만 '아재 감성'만은 같았다. 다행히 같은 또래라 문화적 경험들이 서로 좋아한 거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작품에도 잘 녹아졌다"라고 답했다.  

이어 박인제 감독은 "5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 투입에 부담을 느끼진 않았느냐"라는 질문엔 "연출자는 '날라리 대학생'과 똑같다. 용돈을 많이 주면 줄수록 좋은 거다. 제작비가 많으면 많을수록 구현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라고 재치 있게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장난스럽게 답했지만 박인제 감독은 인트로 시퀀스 제작 비용마저 아낄 정도로 단 한 푼의 제작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는 "'무빙'엔 인트로 시퀀스가 없다. 보통 시청자분들이 그 부분이 나오면 '건너뛰기'를 누르시지 않나. 그래서 저는 차라리 생략하고, 그 돈을 갖고 타이틀에 의미를 두는 도전을 한 거다. 매 회 에피소드에 맞게 타이틀을 다르게 디자인했고, 모든 소제목도 모든 신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라고 밝혔다.

'무빙'의 글로벌 히트 소감을 묻는 말엔 강풀 작가와 출연진에게 공을 돌렸다. 박인제 감독은 "강풀 작가님의 시나리오가  잘 쓴 글이었다. 캐스팅도 '초호화'라고 말씀들 하시는데 저는 원래 초호화 캐스팅만 한다. 그간 다 훌륭한 배우들하고만 작업했다. 이번 '무빙' 역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과 함께했는데 특히 김종수, 전석호 등 작은 배역들까지 모두 다 잘해주셨다. 그래서 저는 현장에서 모니터만 봤지, 별로 한 일이 없다. 감독님들이 다 그렇게 느끼실 텐데 캐스팅, 연기가 연출의 끝이다. 배우분들이 연기를 잘하면 감독은 현장에서 할 일이 없다"라고 겸손하게 얘기했다.

특히 화제를 모은 류승범(프랭크 역) 깜짝 캐스팅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박인제 감독은 "원래 프랭크 캐릭터는 시나리오 발전 단계에서 백인이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백인 배우에게 무술을 시키고 한국말도 어설프게 연기하게 만들고, 자신이 없더라. 비싼 배우들은 섭외할 수가 없고, 스턴트맨을 불러올 수야 있지만 연기가 안 되지 않나. 액션스쿨에 물어보니 러시아 출신 백인, 딱 한 분 계셨다. 고민을 좀 해보자 하다가 강풀 작가님이 '류승범 어떠냐' 하신 거다. 작가님 친한 지인이 류승범 형인 류승완 감독님이기도 하고, 그래서 직접 연락을 하셨다. 그 딱 한 분 계신 백인 스턴트맨은 다른 역할이 있어서 어차피 섭외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류승범에 대해 박인제 감독은 "류승범이 어떤 배우냐면, 무술팀에서 제일 만나고 싶어하는 배우다. 배우들 중에서도 존경하는 배우, 그런 인물이다. 원체 타고난 게 있어서. 뭐든 다 멋있다. 주먹 하나를 휘둘러도 멋있고, 폼이 나온다. 게다가 완벽하다. 또 류승범 자녀가 저희 애랑 나이가 똑같다. 그도 저랑 똑같이 새 가족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무빙' 출연 제안을 받았다. 가족 얘기에 걸려든 거다"고 캐스팅 배경을 설명했다. 

'무빙'이 온라인상을 떠들썩하게 휩쓸었음에도 반응을 찾아보긴커녕 결과물을 시청한 적도 없다는 박인제 감독. 그는 "잘 돼서 정말 좋지만 '무빙'을 안 봤고, 반응도 안 찾아봤다. 감독마다 다를 텐데 전작들을 복기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정반대의 감독이다. 작품이 끝나면 다시는 안 보는데, 이게 자기방어인 거 같다. 망해본 적이 있어서, 그 상처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아직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그렇다. 그리고 제 모든 작품들을 '헤어진 여자친구'라고 느끼기도 하고. 촬영할 땐 정말 사랑하고, 헤어지면 다시는 안 본다. 왜 그러냐면 작품에 제가 너무 보여서 창피한 거다. 아무도 모르고 저만 알 테지만, 날 투영한 게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호평을 받아도 안 본다. '킹덤2'도 아직 못 봤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는 박인제 감독이 놀라운 디테일을 살리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한 동력이기도. 그는 섬세한 연출력의 비결을 묻자 "저의 모든 출발은 '부족한 감독'이라서였다.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임한다"라며 "오히려 망해봤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걸 만들어본다는 도전 의식이 더 크다. 이 재미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라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태도를 보였다.

박인제 감독은 "'무빙'으로는 아주 작게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배웠고, 물리적으로는 이렇게 많은 CG와 와이어 작업을 해냈다는 걸 배웠다. 그 다음에 제일 중요한 거, 배우를 얻었다. 저희 작품에 대사 있는 배우만 120여 명이다"라고 애정을 과시했다. 

'무빙' 시즌2에 관한 물음엔 박인제 감독은 "그건 제 몫이 아니다. 끝나봐야 알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하면서도 "그래도 '무빙'을 하며 배운 것들이 많기 때문에 만약 제가 또 맡게 된다면 업그레이드되어 나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언급했다.

끝으로 박인제 감독은 "'무빙'엔 모든 장르가 다 들어있다. 사실 20부작이면 '모래시계'(1995) '여명의 눈동자'(1991) 정도의 분량이라 젊은 친구들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무빙'은 액션, 가족, 코미디 등 다 아우르고 있어서 쭉 안 보셔도 특정 회만 봐도 재밌다. 실제로 시대별로 띄엄띄엄 보시는 분도 많더라"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무빙'은 이달 20일 18회~20회 마지막 회까지 공개하며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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