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신길뉴타운 내 유일한 ‘유령아파트’… 상가 세입자와 갈등에 사업 지연 우려
다른 구역과는 달리 재개발 아닌 재건축으로 진행
이주비 보상 없어 상가 세입자들 반발… 소송전까지
‘미이주 세대는 신속하게 이주해 주십시오. 미이주 세대를 대상으로 명도소송 진행 중입니다.’
지난 13일 ‘신길뉴타운’이 조성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로 인근에 있는 남서울아파트 정문에는 미이주 세대의 이주를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외관을 하고 있는 지상 5층 규모 아파트들에는 각종 안내문들과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곳곳에는 ‘공가’(空家)라는 붉은색 글씨가 쓰여 있었다.
단지는 이주가 일부 진행된 상황이라 입주민들의 발길이 끊겨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안전진단평가에서 ‘즉각철거’에 해당하는 E등급을 받은 남서울아파트 주변으로 ‘신길센트럴자이’, ‘힐스테이트 클래시안’, ‘보라매 SK뷰’ 등 완공된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신축 아파트들이 높게 솟아 있는 모습은 이질감 마저 들게 했다.
지난 1974년 12월 28일 사용 승인을 받은 구축아파트인 남서울아파트는 신길뉴타운 내 신길10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돼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1월 관리처분인가가 승인돼 이주를 시작했고, 지난 7월 23일 자진 이주 기간이 종료되며 착공만 앞두고 있다. 현재 518가구, 13개동 규모의 이 아파트는 시공사인 대우건설 브랜드가 적용된 812가구 규모의 ‘신길 푸르지오 써밋’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사업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길10재정비구역은 신길뉴타운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사업 속도가 지지부진하다. 신길뉴타운에서 지정이 해제된 지역을 제외하고, 개발을 추진해 온 10개 구역 중 유일하게 아직 건물을 올리지 못했다. 신길13구역에 해당하는 ‘신미아파트’도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공공재건축으로 진행되고 있어 사실상 사업에 차질이 없기 때문에 신길10구역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신길10구역의 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다른 구역들과는 달리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 구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인근 다른 구역들은 다가구주택이나 빌라 등이 밀집된 곳의 정비기반시설 등 도시환경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재개발’로 진행됐다. 그러나 신길10구역은 정비기반시설은 유지하고 노후·불량 공동주택인 남서울아파트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재건축’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을 할 경우 주거이전비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정비법(도정법)상 재건축을 진행할 경우 주거이전비 지급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상가 소유주가 해당 호실을 팔고 나간다면 조합원이 아닌 세입자들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장소를 비워줘야 한다.
이에 신길10구역 내 상가 세입자들은 신길10구역이 재건축이 아닌 재개발로 진행돼야 한다며 버티고 있다. 단지 앞쪽에 늘어서 있는 상가에는 ‘죽기 전에 못나간다’는 현수막이 걸려있기도 했다. 일부 세입자들은 재건축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취지로 관리처분인가 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한 상가 세입자는 “보상도 없이 상가를 당장 비워 달라고 하면, 세입자들은 갈 곳이 없어지는 셈”이라며 “재개발로 진행을 하거나, 조합 측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해줘야 상가를 비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시행사인 한국토지신탁은 점유자가 부동산의 인도를 거절할 경우 강제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효력을 가진 명도소송을 진행하며 맞불을 놨다. 또한 한국토지신탁은 점유이전가처분집행과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조합·시행사와 상가 세입자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사업은 더욱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한국토지신탁에서 보상 관련 합의 조정을 하지 않으면 소송이 늘어지면서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소송이 제기된 상태로는 착공이 어렵기 때문에 소송 리스크가 해결돼야 사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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