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로켓기술 전수' 시사…"대북제재 15년 노력 물거품 공산"(종합)
제재 무력화, 김정은-푸틴 논의 테이블에…안보리 무용론 재점화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이도연 기자 =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으로 북한에 대한 군비억제 노력이 물거품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필두로 한 국제사회가 15년에 걸쳐 노력해온 대북제재가 러시아의 일방적 탈퇴로 허울만 남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간 정상회담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렸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냐는 취재진 물음에 "우리가 여기(우주기지)에 온 이유"라고 답했다.
그는 "북한 지도자(김정은 위원장)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인다"며 "그들(북한)은 자신들의 우주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러시아가 자신들이 보유한 인공위성 발사, 궤도안착, 첨단기능 장착 등 기술을 북한에 이전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서 주목된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확보에 도전하고 있으나 지난 5월에 이어 8월에도 로켓의 비행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해 실패를 거듭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찰위성이 성공해도 상업위성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지만 러시아의 기술이 이전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정찰위성은 핵 탄두를 보유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투발 체계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로켓은 사실상 장거리 미사일과 구조가 똑같아 러시아의 로켓 기술 이전은 북한의 ICBM 기술이 완성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북한과 정찰위성과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포함한 광범위한 군사협력 체계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시간이 있다"며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모든 현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포탄을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에서 군사기술을 얻으려 할 것이라고 의심한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은 무기 거래가 논의될지에 대한 질문에 사실상 고개를 끄덕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웃 국가로서 우리(러시아와 북한)는 공개되거나 발표되지 않아야 할 민감한 분야의 협력을 이행한다"며 "이는 이웃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을 뿐 군사기술과 무기 거래의 교환을 사실상 시인하는 이 같은 발언에 국제사회의 경계심이 증폭되고 있다.
유엔 소식 전문지인 '유엔 디스패치'의 마크 레온 골드버그는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무기 거래가 이뤄진다면 북한의 핵 개발 야망을 막으려 했던 15년간의 외교적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하거나 군사기술을 교환하는 행위는 2006년부터 지속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하는 행위다.
골드버그는 대북 제재가 무력화하면 한반도가 훨씬 더 위험한 장소로 돌변하고 미국은 핵무기를 가진 두 적대국의 동맹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21세기에 유일하게 핵실험을 한 국가로, 2006년 이후 지금까지 6차례나 핵탄두를 터뜨리는 실험을 강행했다.
대북 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는 작년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서방과의 대결 구도가 고착되자 급속도로 변해왔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때 유엔 안보리는 제재로 대응해왔고 러시아도 일부 이견이 있더라도 결정적 순간에 찬성표를 던져왔다.
그러나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도 미중 갈등 고조와 맞물려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를 더는 찬성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22년 5월 처음으로 대북 제재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대북 제재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안보리 무용론이 제기돼온 가운데 이제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엔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나 제재 이행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안보리 무용론이 재점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페스코프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안보리 사안에 대한 프로세스도 논의 주제"라고 말해 제재 무력화를 협의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골드버그는 북한이 7차 핵실험에 나서는 고강도 도발을 하더라도 안보리 차원의 제재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자국 이익에 따라 수시로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골드버그는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가 합의되면 북핵에 맞선 과거의 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는 새로운 외교 질서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간 제재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영향력은 강했다"며 "유엔 안보리가 단합하지 않는다면 김 위원장의 행동에 대한 제어수단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을 막기 위한 국제공조가 실질적 대안이 없는 처지에서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사회는 푸틴 대통령의 절박함과 김 위원장의 기회주의가 이처럼 맞물려 금기로 통해온 핵무기 사용에 대한 경계심이 무뎌진다는 점을 우려한다.
서방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완패하고 자국 내에서 정치적 궁지에 몰리면 전술 핵무기에 손을 댈 수 있다고 예상한다.
푸틴 대통령의 복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우크라이나전에서 열세에 몰릴 때마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거론해왔다.
러시아는 지난 6월부터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의 나토 회원국들과 국경을 맞댄 동맹국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김 위원장도 최근 들어 한반도에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까지도 언급하는 등 핵 위협을 노골화하는 추세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급격한 밀착이 불러올 위험성을 경고했다.
차 석좌는 "러시아군이 북한의 재래식 무력 현대화를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김정은은 더 강압적이고 심지어 치명적인 무력의 사용을 선택할 정도로 대담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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